호텔 부럽지 않은 현지 마을 생활. 귀빈 대접을 받다.
워크어웨이의 기본 원칙은 이렇습니다.
여행자는 호스트가 제시한 노동을, 호스트는 그 대가로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그 원칙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일하지 않았거든요.
돈자니가 제게 부탁한 일은 마을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게 다였어요.
카스텔 델 피아노(Castel del Piano).
직역하면 평야의 성곽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산성(山城) 마을입니다.
그 옛날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등성을 따라 성을 쌓은 마을인 만큼 고립되어있죠.
지금이야 이따금 관광객을 불러들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여기 아이들입니다.
성벽 안의 개구리랄까요.
대도시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하지 않는 한 이들은 좁은 세상 속에 갇혀 살아야만 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딱하게 여긴 돈자니는 워크어웨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이곳에서 맡은 일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스위스 때와는 다른 접대를 받았습니다.
고즈넉한 독방을 쓰는 것은 물론, 매일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청소와 빨래, 다림질까지 해주는 파출부도 있었어요. 여행 동안 습식 스포츠 수건 한 장으로 버텼는데, 뽀송뽀송한 면 수건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집 밖에서도 호의는 이어졌습니다.
하루는 미뤄두었던 이발을 하기 위해 미용실에 갔는데, 제가 돈자니 신부의 손님이라는 이유로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종종 저녁식사에 초대받기도 했고요.
특히, 서로 다른 이웃의 색깔이 듬뿍 담긴 저녁을 먹는다는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게다가 식사는 항상 코스요리였죠. 애피타이져부터 주요리, 디저트까지. 마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칠첩반상을 차려내는 것처럼 정성을 들입니다. 누가 그렇지 않던가요.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실로 엄청난 이탈리아라고.
저는 분명 이곳에 일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봉사활동의 일환이었고, 그 대가로 숙식을 해결하고자 했죠. 깊숙한 이탈리아 현지 문화를 느껴볼 심산이었어요. 그런데 이곳은 그 이상의 대가를 베풀어주었습니다.
제가 오히려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니.
주객이 바뀌어도 단단히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