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르보나라의 배신
이전 화에서 음식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더 할까 합니다.
저보다 한 달 먼저 이곳에 온 미국이 여행자 코너(Conner)가 저에게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Yoon. 너 많이 먹는 거 좋아해?"
여행을 다니다 보면 처음 만난 사람과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로 주고받는 질문.
이를 테면, 이름이 뭐니, 어디서 왔니, 여기 얼마나 지냈니, 어디가 그렇게 좋았니 등등.
그런데 많이 먹는 걸 좋아하냐고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하지만 머지않아 그가 왜 이상한 질문을 했는지 몸소 체험했습니다.
돈자니 신부는 요리의 대가입니다. 항상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자주 외식을 했지만, 틈날 때마다 두 팔 걷어붙이고 이탈리아 집밥을 해주었어요. 수제 햄버거부터 파스타, 수프, 치즈 말이 삼겹살 등 음식 한 번 겹치는 날 없었죠. 맛도 단연 일품이었습니다. 분명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데, 어디서 먹어본 듯한 이맛.
아 맞다. 이탈리아 음식만큼 범세계적인 음식이 또 있었나요.
문제는 양이었습니다.
양이 적어서가 아니라 많아도 너무 많았어요. 한 접시를 배부르게 먹고 행복한 포만감에 사로잡혔을 때쯤, 돈자니는 또 다른 음식을 덜어주었죠.
"아니, 왜 한 끼에 두 끼를 먹는 거죠, 신부님?"
돈자니가 답하길, 이탈리아 사람은 평소에도 음식을 여러 개 준비해 먹는다고 했습니다. 항상 풀코스는 아니지만, 적어도 애피타이저와 주요리를 나눠서 말이죠. 그런 줄도 모르고 첫 음식부터 잔뜩 배불리 먹었다가, 더 맛있는 다음 요리를 모조리 남기곤 했습니다. 호스트가 정성껏 만들어준 음식을 해치우지 못했을 때, 그 속상함과 미안함이란.
이런 일이 생긴 뒤로 어떤 음식이 얼마나 나올지 몰라 먹는 양을 조절하는 혼자만의 눈치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애피타이저가 아무리 맛있어도, 그다음 음식을 먹기 위해 조금만 덜어 먹었죠. 혹여나 다음 음식이 먼저 나온 음식보다 맛이 없으면 어쩌지 노심초사했습니다.
물론 가끔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나올 때가 있어요.
하루는 파스타를 먹기 위해 동네 식당에 갔습니다.
저는 메뉴판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었던 까르보나라를 주문했어요.
이내 종업원이 주문한 음식을 차례차례 들고 나왔죠.
그런데 제가 주문한 까르보나라가 조금 이상했어요.
"돈자니. 이게 제가 주문한 음식이에요?"
"그럼!"
"이게 까르보나라라고요?"
"그럼!"
"엥? 까르보나라는 부드러운 흰색 크림이 들어간 파스타라고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는 스마트폰을 꺼내 한국에서 먹었던 까르보나라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그랬더니 돈자니가 말했죠.
"글쎄다. 내 평생 이탈리아에서 살았지만 그런 까르보나라 듣고 보도 못했는걸? 이 요리는 달걀노른자, 베이컨, 치즈가루. 이 세 가지 재료를 중심으로 고소한 맛을 내는 단순한 파스타야. 이탈리아 음식이 외국으로 나가면서 변형됐나 봐."
정말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노란 면발에 윤기가 흐르더라고요. 이게 바로 달걀노른자인가 봅니다.
고소한 맛?
따위는 잘 모르겠습니다.
좋게 말해 담백하다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느끼했어요.
아무렴 어때요.
현지 호스트 가정과 지내다 보면 한 번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나올 때가 있어요. 먹을 당시에는 괴로웠지만, 이것만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또 있을까요.
그래도 정성껏 요리해준 호스트에게 감사의 표시는 해야 합니다.
그 답례는 다른 게 아니라 그릇을 싹 비울 정도로 맛있게 먹어치우는 거죠.
외식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지만 맛없는, 아니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을 모두 먹는다는 게 실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대비해 생소한 음식은 조금씩 덜어 먹어보세요.
우선 맛을 보고 괜찮으면 한 번 더 덜어 먹는 거죠.
조금 먹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음식을 남기는 건 잘못이니까요.
서로 언어가 안 통해도 음식 조리법은 쉽게 배울 수가 있어요.
이왕 이렇게 여행하는 김에 현지 요리도 배워가면 정말 좋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