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극심한 몸살에 걸렸을 때, 정신 승리하는 법
큰맘 먹고 떠난 여행,
그 첫날부터 몸살에 걸린다면 어떨까요.
더 말할 것도 없이 정말 최악입니다.
이미 예약이란 예약은 모두 했으니 돌이킬 수도 없죠.
일찍이 아팠더라면 일정을 미루기라도 했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루이스네 집을 떠나 루체른에서 2박 3일 여행하는 동안
방금 말씀드렸던 최악의 상황을 겪었습니다.
특히, 179프랑.
한화로 약 21만 원하는 대중교통 3일 이용권(Swiss Pass)을 미리 샀던 터라 아파도 강행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잠을 청했습니다.
짧은 주말여행이라, 또 그 어느 때보다 값비싼 여행이라,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웠지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싸구려 게스트하우스 2층 침대에 누워 끙끙 앓기만 했죠.
한 가지 행운이 있었다면, 다음 날 날씨가 겨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창했다는 거죠.
흰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해발 1700m까지 산악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반소매 티셔츠를 입어도 될 정도였으니까요. 이곳의 겨울 날씨도 저처럼 단단히 고장이 난 모양입니다.
여행 첫날부터 극심한 몸살에 시달려 정말 억울했습니다.
반면에 날씨는 겨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듯했죠.
평소 같았으면 화창한 날에 왜 이렇게 아프냐고 하늘을 원망했을 겁니다.
당연히 좋은 날씨와 최고의 몸 상태만큼 여행에서 행복한 조건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인 거, 다들 아시잖아요?
최악의 날씨 속에 완벽한 컨디션을 가질 수도 있고 이번처럼 그 반대일 수도 있죠.
저는 두 상황을 모두 스위스에서 겪었습니다.
루이스네 집에 있을 때는 몸만 멀쩡하고 날씨는 흐리멍덩했으니까요.
"둘 중 언제가 가장 최악이었나요?"라고 물어보신다면, 글쎄요.
쉽게 대답할 순 없습니다.
오직 딱하나, 몸은 아파도 날씨만큼은 좋으니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는 거죠.
어쩌면 제가 아픈 만큼 날이 좋아진 게 아니었을까요.
만약 비구름이나 짙은 안개가 끼고 저만 멀쩡했다면 그게 더 우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여행은 놀고, 먹고, 찍고, 쇼핑하는 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몸이 아파 숙소에서 온종일 쉬는 것도 여행이고, 힘들게 만난 동행과 헤어지는 것도 여행입니다.
비싼 물가 때문에 맛있는 음식 대신 마트에서 빵을 사 먹는 것도,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는 것도 모두 여행이죠.
일상을 떠나 뜻밖의 일이 생기는 것.
항상 행복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진정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아픈 것도, 쉬는 것도, 모두 여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