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제 Dec 12. 2022

나에겐.. 꿈이.. 없었다..

꿈이 없던 30대의 늦은 고민

지금 와서 나를 돌아보면 나에게는 꿈이란 게 없었던 것 같다.


90년대 영화 "비트"에서 우성 형님의 시작 초반부 내레이션에서 " 나에겐 꿈이 없었다"라는 대사에 무척이나 공감하며 현실 자각을 하며 살고 있는 요즘이다.


1991년 국민학교 1학년 시절, 장래희망을 기재하는 란에 막연하게 "과학자"라는 아주 멀고 먼 꿈을 적었었다.

그때는 그냥 어린이들에게 그게 유행(?)이었던 거 같다.

한 교실에 20-30명 남짓되는 아이들 중 절반이 과학자가 꿈이었으니.. 우리나라의 과학 발전의 미래가 참 밝았구나(?)


사회적인 분위기도 지금처럼 다양한 직업과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던 것 같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졸업해서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가져야 된다는 부모님의 주입식(?) 잔소리를 남발하는 분위기였던 것도 같다.


돌잔치에 돌잡이 물건만 봐도 그렇지 않나.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던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장래희망에 "공무원"이라고 적었었다.

그때도 꿈이 없어서 부모님께 여쭤보고 부모님이 원하시던 걸 적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나는 참 효심이 지극하고(?) 자주적이지 못했던 아이인 듯싶다.


현재 시대의 공무원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울 정도의 경쟁률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시절, 우리네 부모님 때에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신 분(?)들이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목적으로 하던 느낌의 직종이라고 들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공무원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참으로 쉽게들 얘기했던 것 같다.

적어도 우리 친척들은....


그 시대에는 지역특성상 큰 회사가 없는

우리 동네(?)에서는 뛰어나게 공부를 잘해서 “사”자 직업이 아니면 자영업, 농수축산업처럼 개인 일을 하며 돈을 많이 벌거나 안정적인 월급쟁이인 공무원이 선호하는 직업군이었다.


공부에 뛰어나지 않은 아들 임을 진즉에 알아차리신 엄마와 장사를 평생 업으로 하시던 아빠는

자식은 남들 쉴 때 쉬고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출퇴근이 있고 퇴근 후에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이 있는 직업을 원하셔서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나 또한 별다른 꿈이 없었기에 어린 나이에 무엇인지도 모르는 "공무원"이라는 세 글자를 장래희망란에 꾸준히 적어왔다.


하지만 2020년인 현재 나는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운 공무원은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사업,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지도 않다.


그냥.. 그냥.. 나는.. 샐러리맨이다.


꿈이 없던 나는 부모님이 바라시던대로(?)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월급쟁이에, 안정적이고 “워라벨”을 실천하며, 힘겹게 살고는 있지만 어쩌면 공무원과 같은 맥락으로 살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자아도취에 빠져 효도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뿌듯(?)하기까지 한 지경이다.

그런 자아도취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서른이 훌쩍 넘은 후반부를 달려가고 있는

 이 시점에..


 나는 요즘 말로 "현타"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오고 사춘기 청소년 마냥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


10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한 때 열정적이고 사랑했던 직장과 권태기(?)를 겪고 있고,

지극히 안정적이고 잘 변하지 않는 월급이란 놈(?)

을 수혈받고 있지만 매달 부족한 수혈에 허덕이고 있는 나와 매번 마주하며,


여태껏  내가..


무얼 하고 있었으며..

무얼 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지..


에 대한 의구심과

마흔 줄이 다 되어서야 새로운 장래희망을 찾고

있는 내 꼴을 보며 지금 글을 적는 순간에도

현자 타임님께서 찾아오고 계시다.


그래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만 책임지면 되는 상황 일 때, 뭐라도 해보고 자 나와의 심층적인 면담을 해본 결과


당장 무엇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래도 이 세상에 살았던 동안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일과 막연하게 하고 싶어 시작하지 못했던 것들을 취미로라도 시작을 해보자 라고 나와 협의를 했다.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MBC 무한도전 중 “박명수 어록”

어떤 이가 말했듯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땐 너무 늦은 거다"라는 말에 찐 공감하는 1인 중에 한 명이지만 "못 먹어도 고"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처한 현실을 한탄하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지금부터 뭐라도 시작하자 다짐하며,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관심 있고 좋아했었던 글쓰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나와 같이 현실에 대한 회의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과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고 앞으로 나의 글이 친구, 동생, 형, 오빠처럼 위로가 되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작가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