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

당신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by HAN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모질게도 비바람이 저 바다를 덮어
산을 이룬 거센 파도 천지를 흔든다
이 밤에도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한 손 정성 이어 바다를 비친다


요 며칠 난 이 등대지기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가사를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본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생각나서.

잠이 안 와서 그냥 불을 켜고 등대지기 노래를 검색했다. 긴 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고은 작사, 영국 민요라고 알려졌지만, 원곡은 미국의 찬송가 "The Golden Rule"이고 곡의 가사는 1947년 이후 발행된 일본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의 노래 제목과 가사 내용을 그대로 차용했다. 내가 찾는 건 이런 게 아닌데... 나는 뭘 찾고 싶은 걸까?




카카오스토리를 열었더니 과거의 오늘 있었던 추억들이라며 2013년에 쓴 글이 첫 화면에 있다.


결혼 19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님과 단둘이 데이트를 했다. 엔제리너스에서 커피도 마시고, 팔짱을 끼고 버스정거장까지 배웅도 해드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셨음 하루도 버티기 힘든 날들을 헤치고 살아온 아버님의 날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사시기에 변변한 옷 하나 없으신 아버님이 짠하기도 하지만 자랑스럽다.

아버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하나님은 그냥 돌을 한번 던져 골리앗을 맞추게 하신 게 아니라,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도록, 양들을 지킬 때 수도 없이 돌팔매를 연습시키셨다.

다윗이 양들을 위해 두려움 가운데 돌을 던졌던 것처럼, 지금 우리도 앞으로 각자가 이룰 기적을 위해 뭔가를 고통 가운데서 훈련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계획하심과 우리를 향한 사랑을 믿는다.




지난 금요일 퇴근 후 아빠에게 갔었다. 엄마는 심한 감기로 방에 누워계셨고 아빠는 거실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아빠가 그러셨다. 9시에 티브이를 틀면 3만 원을 번다고. 난 그러냐며 웃고 엄마방으로 갔다. 옆으로 누워계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물었다.

"엄마, 아빠 간병하느라 힘들어?"

"아니."

아니라는 대답에 눈물이 날뻔했다.

10시가 다 돼가서 아빠를 주무시라고 하고 불을 끄려는데 아빠가 티브이를 켜라고. 9시에 티브이를 켜놓으면 평균 2-3만 원은 번다고.


아빠는 주식을 하셨다. 8시 반이 되면 티브이와 컴퓨터 등 각종 전자기기를 켜시고 주식 방송을 들으셨다. 3시 반이 되면 한 시간 정도 그날 매매를 기록하셨다. 아빠가 말씀하신 9시는 주식이 시작하는 9시다. 치매 증상을 보이시면서 아빠는 그때그때 달리 가족 이름을 말씀하시면서 돈을 내놨으니까 밥을 사줘야 한다거나 이발을 시키라고 말씀하신다.

삼만 원.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토록 매달렸던 주식. 그 삼만 원.

난 요즘 울지 않았다. 삼만 원이 참고 있던 눈물을 건드렸다. 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눈물이 났다. 아무 일 없던 듯 집에 들어가니 작은 아이가 엄마 울었냐고. 할머니가 편찮으시고 할아버지가 삼만 원 번다고 티브이 틀라고 했다는 얘기를 하면서 삼만 원 대사에서 다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제 괜찮다고 삼만 원 때문에 눈물이 났다고 하면서 다시 삼만 원에 눈물이 났다. 작은 아이가 이상한 듯 나를 보면서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우는 건 이해하는데 왜 삼만 원에 우냐고. 그 삼만 원은 설명하기에 너무 많은 걸 담고 있다. 아빠는 버스표와 가전제품을 같이 취급하셨고 새벽 5시에 가게에 나가셔서 밤 11시에 들어오셨다. 가전제품 수리를 하느라 손에는 항상 기름때가 잔뜩 묻어있었다. 그런데 그 성실함은 경제적인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일을 다 정리하시고 노인들 봉사활동도 못하시게 되면서 아빠는 주식을 하셨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처럼 매달리셨고 일정 금액이 넘으면 찾아서 가족들을 위해 쓰셨다.




아버님의 삶도, 아빠의 삶도, 우리의 삶도 등대지기의 삶이란 생각이 든다.

한겨울에 거센 파도를 오히려 모으고, 거센 파도가 천지를 흔들어도 그곳을 지키는 등대지기. 그 등대지기는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그 처절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디고 그곳에 묵묵히 있는다. 그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다. 그건 신이 준 마음이다. 우리의 사랑은 한순간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기에.


아빠는 독감 이후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셨고 집에서 간병이 어려워져서 요양병원을 알아봐야 하는 상태가 되셨다. 난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삼만 원으로 이름 지어진 아빠의 마음을 잊지 않을 거다.


죽어라 애쓰며 살아왔지만 허무한 삶을 마치고 가는 많은 분들. 신은 말씀 하신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지금의 삶이 끝이 아니라고. 이제 내 품에서 쉼을 누리라고.


겨울마다 폈을 눈꽃을 이 나이가 돼서 처음 봤다. 내가 세상적으로 무너지는 것만큼 난 새로운 것을 본다. 우린 다윗처럼 무언가 할 일을 위해 준비되고 있다. 난 신을 믿는다. 10년 전과 같은 마음으로.

언젠가 가실 아빠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신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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