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치를 먹다가, 김치가 되어 가는 동안 배추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생각하며 이런 글을 썼었다.
난 아줌마가 요리조리 보고 웃으면서 나를 데려가서 예쁘게 쓰일 줄 알았어. 처음엔 재밌었어. 물놀이를 했거든. 물에서 흔들흔들. 그런데 나와서 물기도 마르기 전에 나한테 소금을 뿌리는 거야. 재수가 없다고 소금을 뿌리는 건가? 이거 뭐지? 그때부터 난 망가지기 시작했어. 몇 시간 만에 나의 싱싱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주름이 자글자글해졌거든.
너도 알지? 나의 매력이 흰빛과 초록빛으로 둘러싸인 노란빛의 완벽한 조화라는 거. 작정하고 나를 망가뜨리려는 사람처럼, 아줌마가 나를 조각내기 시작했어. 사실 물놀이를 하기 전에 난 반으로 잘라졌어. 그래도 나의 매력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번엔 잘게 잘라지면서 나의 매력도 산산조각 났지.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어. 정신을 차려보니까 난 아주 작은 곳으로 옮겨져 있었고 이상한 조무래기들과 함께 붙어서 숨도 쉴 수 없었어. 그곳은 정말 최악이었어. 그 조무래기들 중에는 안 씻었는지 이상한 냄새가 나는 녀석들도 있고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어. 이 토할 거 같은 냄새. 무슨 냄새지? 그래, 젓갈 냄새다.
헐. 난 내 모습을 보고 좌절했어. 그 녀석들과 함께 난 시뻘건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나의 우아함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이 몰골이라니. 난 이마에 끈을 질끈 동여매고 앓아누웠어.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었거든.
얼마큼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누가 자꾸 나를 건드리는 거야. 간지럽히는 건가? 눈을 떠보니까 난 척척한데 누워있었나 봐. 보글보글 물방울들 사이에 머리만 큰 조그마한 아이들이 엄청 많더라고. 깔깔거리는 소리도 시끄럽고 나를 건드리는 것도 화가 났지만 화를 낼 기력이 없어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 게네들은 처음부터 내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하루 종일 종알종알. 자기들은 유익한 균이라나 모라나.
그런데 이상하지? 어느새 나도 게네들 등살에 살짝 미소를 짓는 거야. 다시는 웃지 못할 줄 알았는데. 난 다시 잘 살아보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내가 이 모습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난 두려운 마음으로 나를 찬찬히 들여다봤어. 솔직히 난 조금 놀랐어. 나도 나름 괜찮더라고. 같이 숨도 못 쉬게 눌려 있던 녀석들과 하나가 되어 풍미를 갖게 됐나 봐. 난 붉은빛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붉은빛도 나름 매력적이고.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나의 우아함은 너무 얕은 거였는지도 몰라.
난 김치를 담가본 적이 없다. 상상으로 이 글을 쓰다가 혹시 몰라서 김치담그는 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좌절했다. 과정이 다 틀려서.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보면서 '엉망진창'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우린 얼마나 많은 착각과 오류 속에 살고 있을까?
배추 이야기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성숙, 성장, 미처 알지 못하는 진정한 아름다움, 스스럼없는 주위의 사랑. 뭐 이런 거다.
엄마랑, 언니랑 나, 우린 3개월 차 간병인들이다. 이 셋이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아빠 머리를 어떻게 감겨드릴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아빠가 잠시만 서실 수 있다면 바퀴 달린 의자에 앉혀 욕실까지 가고 둘이 부축해서 변기에 앉히기로 했다. 다행히 아빠는 우리들의 도움으로 침대 밖으로 나와 서셨다. 갈 때는 그래도 괜찮은데 올 때는 힘이 빠진 상황이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우리는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몇 번의 경험을 토대로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다. 아빠는 연세에 비해 피부도 좋고 얼굴이 환자 같지 않으시다.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로션도 발라드리니 얼굴이 더 훤해지셨다. 우린 너무 뿌듯했다. 함께 하면 못할 게 없다고.
아마 이 과정도 전문인이 잘 들여다보면 엉망진창이었을 거다. 그래도 괜찮다. 함께 사랑을 나누고 배우는 과정이니까.
등대지기 글을 쓰고 나서 등대지기 노래를 녹음했다. 아빠 들려주려고. 난 분명 아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녹음을 하려니 음정, 박자도 모르겠고 녹음해서 들어보니 장송곡 처럼 되었다. 그래도 난 생각나면 하는 사람이라 가서 들려줬다. 언니랑 엄마는 듣다가 나갔고 나중에 동생에게 얘기했다가 엄청 연설을 들었다. 장송곡 같은 노래가 환자 정서에 얼마나 안 좋은지에 대해. 난 다른 곡을 시도했고 모든 노래를 장송곡처럼 만드는 나의 재주는 간병팀과 아빠에게 또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다음엔 뭘 녹음할까?
내 삶도, 내 글도 엉망진창인 2022년이 지나간다. 내가 생각해도 난 정형화된 인간형은 아닌 거 같다. 물론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인지 안다. 그래서 행복한 마음으로 2022년을 채운다.
제목의 사진은 같이 근무하는 직원분이 언 손을 녹이라고 주신 거다. 너무 뜨거울까 봐 휴지를 감싸서. 난 이런 사랑에 감격한다.
호두과자, 달고나, 살 빼는 부적 등 2022년을 감사함으로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건 주위의 이런 사랑 때문이다. 서로에게 이런 사랑이 되길 소망한다. 이곳에서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