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의 엄동설한(N행시)

초라한 삶은 없다

by HAN

최병창(아빠)의 엄동설한


선을 다한 삶이었을까

석에 누워 생각하니

눈물이 앞선다

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밟힌 눈처럼

미조차 알 수 없이

힘겹기만 했던 시간들


지 척을 해주고 싶다

애쓰며 살아온 내게

그라미도 그려줄 거다

내 삶의 시험지에

렘도 기대도 없이

두려움 가득 안고 살아갈

남은 날들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그래도 잘 산 삶이 아닐까


김정희(엄마)의 엄동설한


진 맥주처럼

맥이 풀렸다

잘 살아보고 싶었는데

미한 희망이나마

두 손 꼭 부여잡고

지를 불태웠던 삶이

끝을 향한다


살도 부리고 몸도 사렸으면

더 나았을까

안 소리를 듣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명할 수 없는 통증이

온몸을 짓누른다

참을 바라본 내 모습에

눈물이 난다




아빠, 엄마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그분들의 삶을 돌아보며 나의 추측과 바람을 쓴 글이다.


아빠는 이번 주에 요양병원에 가시기로 했다. 2022년의 마지막 날을 우린 우울한 마음으로 보냈다. 엄마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엄마의 N행시에는 뭔가 긍정적인 바람조차 넣을 수가 없었다. 쓰던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러 갔다. 다시 돌아보는 1년, 새롭게 맞는 1년.

예배를 드리면서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나의 신이 아빠도 사랑하시는데 왜 난 이러고 있지? 마음 아프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아빠를 향한 신의 사랑을 보자.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 싶다. 이건 내게도 좀 생뚱맞았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지금의 나이에? 어떤 공부를? 나도 모른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생각들이 먼지떨이가 되어 우울함을 털고 뭔지 모를 기대감으로 2023년을 시작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본 그분들의 삶.

그분들의 삶을 돌아보며 쌉싸름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처음엔 쓴 거 같지만 먹다 보면 그 매력을 알게 돼서 다시 찾게 되는 맛. 언뜻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들쳐볼수록 많은 것들을 담고 있고, 보이지 않는 사랑이 가득한 그분들의 삶.


요양병원을 의논하면서 형부가, 아빠 마음 편하게 치료받으시라고 몇 개월 치 병원비 할 만큼의 큰돈을 내놨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없는 돈을 만들어서, 돈걱정할 부모를 위해 당연한 도리라며. 오히려 고민한 게 죄송하다고. 오늘 제부가 그만큼의 돈을 또 내놨다. 다른 형님들 하는데 한 번도 못했다고. 아빠, 엄마에겐 가장 살가운 사위로 자주 식사대접을 하지만 사치를 하거나 함부로 돈을 쓰지 않는 제부다. 시키면 할 수 있을까?

이건 그냥 아빠, 엄마, 우리가 받는 사랑이다. 난 돈이 아니라 그 사랑에 감격한다.


난 어떤 식으로든 내가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다는 공부. 언젠가 사랑을 흘려보내는 도구가 될 거다.


초라한 삶은 없다. 소중한 사람들이 사랑의 눈물을 생수삼아 살아내는 삶이기에 위대하다. 우리가 모를 뿐이다. 사랑의 눈물을 기억하고 잘 살아내길 바란다. 누군가는 대신 울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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