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계획

이 겨울에 전하는 위로

by HAN

그냥 웃으며 가면 돼

내일 다시 볼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멈칫거리면

두고 가는 네 마음이

철없이 다시 네게 올 테니까


두고 가는 그 마음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겠지만


넌 그저 사랑한 만큼

그 마음 덜어내고

그리움으로 채우면 돼




올 겨울 풍경은 유난히 시리도록 예쁘다.


아버님 댁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본 석양에 눈물이 난다. 따뜻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마음 시린 아름다움이다. 한파주의보, 운전조심 문자가 계속 울리고 차에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캐럴이 쏟아져 나온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거리 풍경은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눈 내린 거리를 저마다 손에 케이크 상자를 들고 총총총 발걸음을 옮긴다.


아빠가 편찮으신 후 약국 식구들은 나를 걱정한다.

힘들겠네. 그 마음이 오죽하겠니.

어쩌면 그 대사가 생각나서 눈물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건 위로가 아니다. 눈물을 건드렸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위로는 이런 거다.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웃는 거. 이 땅을 살아가는 건 누구에게나 힘겹고, 힘겨운 사람들은 웃을 일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렇게 눈물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언젠가 난 길가는 사람을 잡고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것도 위로다. 진심이 담긴 말은 어떤 말이든 언젠가는 위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게 아닐까?


눈물이 난 건 지금의 상황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우리 딸 다섯은 이상적인 팀이다. 각자 이해가 안 간다고 툴툴대고 카톡방을 나가기도 하지만 어느새 서로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서로를 돕는다. 아빠가 편찮으시기 시작하면서 우린 각자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알아서 할 일을 찾았다. 엄마와 언니는 직접적인 간병인으로, 나는 기사와 심부름으로, 셋째는 주치의로 아빠를 돌본다. 넷째는 아빠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사업을 하나 더 시작했다. 아빠 돌아가시기 전에 잘한다고. 그러지 않아도 신경 쓸게 많아서 두통약을 달고 사는 동생은 과감히 도전했고 병원비를 할 만큼 추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막내는 우리 집 총무다. 방학을 앞두고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강의 들어오는걸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한다고 한다. 장기간이 될 수 있는 아빠의 병원비를 위해서. 우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더 똘똘 뭉치는 사람들이고, 사위들은 소홀해진 집안일을 이해하고 도와준다. 특히 형부는 큰 아들처럼 모든 걸 보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위로와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


내가 마음이 아픈 건 아빠를 요양병원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다. 아빠가 편찮으시기 전 엄마는 무릎 때문에 진료를 받고 있었고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할지 더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었다. 3개월을 아빠와 비슷하게 드시면서 버틴 엄마를 더 이상 이대로 두면 안 되는 시기가 왔다. 언니가 아무리 좋은 걸 차려놔도 혼자 그걸 어떻게 편하게 먹냐고. 그건 엄마 성격이라 이제 와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언니도 어느새 한겨울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같은 모습이다.

아빠는 여전히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시지만 조금 좋아지셨다. 조금 좋아지셨으니까 조금 더 버텨야 할까? 조금 좋아지셨으니까 엄마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는 게 좋을까? 요양병원은 한번 가면 못 오는 곳이 아니다. 아니면 다시 오면 된다.

난 아빠를 보내고 싶지 않다고 우는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윤정아, 그건 집착이야. 네가 간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잠시 보냈다가 다시 모시고 오자.




엄마, 아빠, 언니와 나. 이렇게 넷이 병원을 다니고 간병을 할 때면 난 천진난만한 아이다. 우린 나의 철없는 대사에 어이가 없어서 많이 웃는다. 병원에 가기 전 여행 가는 사람들처럼 맛집을 찾고, 차 안이 노래방인양 유튜브로 노래를 찾아 같이 부르며 간다. 언니는 내게 말한다. 그래도 너 때문에 웃으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난 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난 언제든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연약한 어린아이지만 어려움 앞에서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난 하나님 앞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진다. 내 감정을 포장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웃음을 찾고 잘 풀어가면 된다고 다른 사람들을 격려한다. 신의 사랑을 믿으니까.


어느덧 약국 식구들이 편해졌고 너무 방심한 탓에 약국에서 나의 이런 철없는 모습을 보였다. 동생들 앞에서도 잘 안 하는데.

"약사님, 관심받는 거 좋아하세요?"

나 관심받는 거 싫어한다. 그냥 함께 웃는 거 좋아한다.


지금 다니는 약국은 하나님이 이때를 위해 보내준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곳에 온 지 7개월이 되어간다. 처음엔 서로 잘 몰라서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난 이곳에서 쉼을 누린다. 겨울이라 처방이 늘어 바빠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보내는 하루는 선물이다. 남편과 아이들의 배려로 난 퇴근 후 아빠네 들러 철딱서니 없는 소리로 웃으며 또 다른 선물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선물들을 많이 받기 바라는 마음이다.


이별 계획. 이별의 순간이 오면 당황하지 않고 난 이렇게 할 거다. 울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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