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2022년

그래도 괜찮아

by HAN

나의 2022년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망이지만 완전

하지는 않았어

심이 느껴지고

의적이래




어제 김치를 먹다가, 김치가 되어 가는 동안 배추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며 이런 글을 썼었다.


난 아줌마가 요리조리 보고 웃으면서 나를 데려가서 예쁘게 쓰일 줄 알았어. 처음엔 재밌었어. 물놀이를 했거든. 물에서 흔들흔들. 그런데 나와서 물기도 마르기 전에 나한테 소금을 뿌리는 거야. 재수가 없다고 소금을 뿌리는 건가? 이거 뭐지? 그때부터 난 망가지기 시작했어. 몇 시간 만에 나의 싱싱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주름이 자글자글해졌거든.

너도 알지? 나의 매력이 흰빛과 초록빛으로 둘러싸인 노란빛의 완벽한 조화라는 거. 작정하고 나를 망가뜨리려는 사람처럼, 아줌마가 나를 조각내기 시작했어. 사실 물놀이를 하기 전에 난 반으로 잘라졌어. 그래도 나의 매력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번엔 잘게 잘라지면서 나의 매력도 산산조각 났지.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어. 정신을 차려보니까 난 아주 작은 곳으로 옮겨져 있었고 이상한 조무래기들과 함께 붙어서 숨도 쉴 수 없었어. 그곳은 정말 최악이었어. 그 조무래기들 중에는 안 씻었는지 이상한 냄새가 나는 녀석들도 있고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어. 이 토할 거 같은 냄새. 슨 냄새지? 그래, 젓갈 냄새다.

헐. 난 내 모습을 보고 좌절했어. 그 녀석들과 함께 난 시뻘건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나의 우아함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이 몰골이라니. 난 이마에 끈을 질끈 동여매고 앓아누웠어.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었거든.

얼마큼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누가 자꾸 나를 건드리는 거야. 간지럽히는 건가? 눈을 떠보니까 난 척척한데 누워있었나 봐. 보글보글 물방울들 사이에 머리만 큰 조그마한 아이들이 엄청 많더라고. 깔깔거리는 소리도 시끄럽고 나를 건드리는 것도 화가 났지만 화를 낼 기력이 없어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 게네들은 처음부터 내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하루 종일 종알종알. 자기들은 유익한 균이라나 모라나.

그런데 이상하지? 어느새 나도 게네들 등살에 살짝 미소를 짓는 거야. 다시는 웃지 못할 줄 알았는데. 난 다시 잘 살아보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내가 이 모습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난 두려운 마음으로 나를 찬찬히 들여다봤어. 솔직히 난 조금 놀랐어. 나도 나름 괜찮더라고. 같이 숨도 못 쉬게 눌려 있던 녀석들과 하나가 되어 풍미를 갖게 됐나 봐. 난 붉은빛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붉은빛도 나름 매력적이고.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나의 우아함은 너무 얕은 거였는지도 몰라.


난 김치를 담가본 적이 없다. 상상으로 이 글을 쓰다가 혹시 몰라서 김치 담그는 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좌절했다. 과정이 다 틀려서.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보면서 '엉망진창'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우린 얼마나 많은 착각과 오류 속에 살고 있을까?


배추 이야기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성숙, 성장, 미처 알지 못하는 진정한 아름다움, 스스럼없는 주위의 사랑. 뭐 이런 거다.




엄마랑, 언니랑 나, 우린 3개월 차 간병인들이다. 이 셋이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아빠 머리를 어떻게 감겨드릴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아빠가 잠시만 서실 수 있다면 바퀴 달린 의자에 앉혀 욕실까지 가고 둘이 부축해서 변기에 앉히기로 했다. 다행히 아빠는 우리들의 도움으로 침대 밖으로 나와 서셨다. 갈 때는 그래도 괜찮은데 올 때는 힘이 빠진 상황이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우리는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몇 번의 경험을 토대로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다. 아빠는 연세에 비해 피부도 좋고 얼굴이 환자 같지 않으시다.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로션도 발라드리니 얼굴이 더 훤해지셨다. 우린 너무 뿌듯했다. 함께 하면 못할 게 없다고.

아마 이 과정도 전문인이 잘 들여다보면 엉망진창이었을 거다. 그래도 괜찮다. 함께 사랑을 나누고 배우는 과정이니까.




등대지기 글을 쓰고 나서 등대지기 노래를 녹음했다. 아빠 들려주려고. 난 분명 아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녹음을 하려니 음정, 박자도 모르겠고 녹음해서 들어보니 장송곡 처럼 되었다. 그래도 난 생각나면 하는 사람이라 가서 들려줬다. 언니랑 엄마는 듣다가 나갔고 나중에 동생에게 얘기했다가 엄청 연설을 들었다. 장송곡 같은 노래가 환자 정서에 얼마나 안 좋은지에 대해. 난 다른 곡을 시도했고 모든 노래를 장송곡처럼 만드는 나의 재주는 간병팀과 아빠에게 또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다음엔 뭘 녹음할까?




내 삶도, 내 글도 엉망진창인 2022년이 지나간다. 내가 생각해도 난 정형화된 인간형은 아닌 거 같다. 물론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인지 안다. 그래서 행복한 마음으로 2022년을 채운다.


제목의 사진은 같이 근무하는 직원분이 언 손을 녹이라고 주신 거다. 너무 뜨거울까 봐 휴지를 감싸서. 난 이런 사랑에 감격한다.

호두과자, 달고나, 살 빼는 부적 등 2022년을 감사함으로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건 주위의 이런 사랑 때문이다. 서로에게 이런 사랑이 되길 소망한다. 이곳에서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