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솔깃하게 한 너

시듦이 날개를 달아준 목련

by HAN

혹시 내가 애칭을 지어줘도 되겠어?

아무에게나 이런 제안을 하지 않는데 넌 날 솔깃하게 했거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내가 사용하는 '솔깃'이라는 표현은 '관심을 갖게 한다'는 의미야.

사실 그동안 난 시들어가는 목련을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네 모습이 좀 낯설었어. 시들어서 예쁘지 않은 거 같은데 뭔가 색의 조합이 예쁜 거 같기도 하고, 말라 뒤틀린 모습이 날갯짓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동안 많은 목련을 봤는데 넌 좀 특별한 거 같아. 시들어가는데도 매력적이란 말이지.


아~ 애칭. 자 몇 글자가 좋은지 골라봐.


한 글자로 하면 '음'.

글자수가 적을수록 함축적이야. 뭔가 생각할 때 내는 소리 음(→). 그리고 알게 되면 인사하듯 음을 내렸다 올려서 음(↓↑). 두 가지 다를 의미해.

네가 무언가 생각하게 하고 알게 한다는 의미야.


두 글자로 하면 '나나'

널 보 금방이라도 날갯짓하며 날 거 같아서 붙인 이름이야. 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상(飛上)이라고 해도 되지만 이건 좀 너무 딱딱하잖아. 그래서 귀엽게 한 거야. 나는 건가? 나나?


세 글자로 하면 "꿈틀이"

뭔가를 시작하는 느낌의 꿈틀꿈틀.

말라서 제멋대로 비틀어지며 매끄럽지 않은 꽃잎이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의 느슨해진 넥타이 생각나게 해. 뭔가를 이루어내고 말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널 보면 나도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를 꿈틀 되도록 만든다는 의미야.


네 글자로 하면 "비칠레라"

조지훈 작가의 '승무'라는 시 알지? 거기에 '나빌레라'라는 표현이 나오잖아. '나비 일려나'와 '나비 일리라'를 함께 내포한 표현. 나비 대신 빛을 넣은 거야. 네 안에서 빛 같은 것을 보고, 내가 본 것이 꼭 빛이길 바라는 의미.

난 죽음을 향하는 아빠를 보며 마음이 많이 아프거든. 시들어가면서도 나를 솔깃하게 한 너를 보며 뭔가 새로운 의미를 찾고 싶은가 봐.


다섯 글자로 하면 "보고 또 보고"

넌 시들어가는데도 목련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아직 예전의 모습이 남아있어서 시들기 전의 네 모습도 상상되고. 어쩜 넌 시원시원한 넓은 잎으로 날 보고 환히 웃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아마 그때 내가 널 봤다 해도 난 네게 솔깃하지 않았을 거야. 그땐 네 잎이 날개 같지도 않았을 거고 지금의 빛깔도 아니었을 테니까.

난 지금 네게 솔깃하고 널 보고 또 봐. 매력적인데 언제 못 볼지 몰라서. 보고 또 본다는, 보고 또 보고 싶다는 두 가지 의미를 다 담은 거야.


어떤 게 맘에 들어? 난 다 좋아서 한 가지를 추천하지 못하겠어. 널 보면 다섯 가지 의미가 다 떠오르거든.




아빠가 입원하신 지 3주가 되었다. 우리는 아빠가 병원에 계신 동안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서울랜드도 갔다. 그리고 올 때는 자연스레 아빠 얘기를 했다.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좋은 경치를 구경하고 재미있는 걸 해도 마음 한편에선 눈물이 흐른다. 이건 내가 착해서가 아니다. 온전히 아빠의 회복만을 바란다면 덜 울었을 거다. 차라리 돌아가시는 게 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파도 되어 죄책감과 슬픔에 나를 몰아넣는다.


먼 길을 와서 필요한 물품만 주고 갔다고 그다음에 갔을 때 간병하시는 여사님이 아빠를 휠체어에 태워 모셔왔었다. 그때 병원 입구에서 본 아빠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기운이 없어 떨궈진 고개, 부어있던 오른손, 마른 얼굴, 환자복 사이로 보인 맨살. 그때 바람은 왜 그리 불었는지.


아빠는 어제 폐렴증상이 있어서 중환자실로 옮겨지셨고 지금은 안정되어 경과를 보고 있다. 중환자실 소리에 생각할 틈도 없이 떨어졌던 눈물. 오늘 새벽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줄 몰랐다. 건조기가 끝나기 기다리면서 우연히 낮에 찍었던 사진을 봤다. 눈에 들어온 제목의 사진을 보고 또 보다 이 글을 쓴다.


시듦이 날개 되어준 목련럼 슬픔을 지나는 이들의 지금 시간도 빛나길, 슬픔이 날개 되어주길 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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