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도 알지?
내가 아빠를 제일 많이 닮은 거.
그래서 궁금해졌어.
아빠도 겁쟁인가?
어제 누군가의 글을 읽는데 '씩씩하다'라는 단어가 나왔거든.
씩씩하다.
난 왜 이 단어가 그렇게 낯설지?
시골 외딴집 모퉁이에 핀 한송이 들꽃,
그 들꽃을 웅크리고 앉아서 바라보는 나.
언젠가 그 장면이 떠올랐는데
요즘 부쩍 그 장면이 많이 생각나.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거,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나 봐.
그래서 눈물이 나나?
며칠 전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길 때
언니랑 같이 아빠 봤지?
언제 옮길지 모른다고 해서 일찍 갔었어.
기다리면서 둘러보니까 병원 근처에 둘레길이 있더라고.
아빠, 봄에도 단풍이 있고 낙엽이 있는 거 알아?
난 이번 봄에 처음으로 계절이 공존한다는 걸 알았어.
우리네 삶의 순간들처럼.
그런데 웃기지? 웃긴 게 아니라 한심 한 건가?
중환자실에서 병실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짧은 시간의 만남을 위해
병원 근처에서만 4시간 반을 넘게 기다렸는데
정작 아빠를 만나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고작 우리가 한 말은 우리 이름이 뭐냐고.
아빠는 엉덩이에 피가 보일 만큼 헐었는데 좋아 보인다고.
아빠, 그런 말만 하고 와서 미안해.
아빠, 왜 내가 겁쟁인 줄 알아?
한번 경험한 시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최악을 먼저 생각하게 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빠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어.
지금 시간의 의미에 집중하지 못하고
겁먹고 미리 눈을 감아버리게 돼.
오늘 우연히 첫 직장에서 만났던 친구와 연락을 했었어.
친구 아빠도 병원에서 오래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알았대.
생각보다 아빠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걸.
그 말에 눈물이 났어.
나도 그럴 거 같거든.
친구 얘기를 듣고 이 편지를 쓰는 거야.
아빠, 이제 겁쟁이 안 하고 씩씩해지려고.
후회 없이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내가 아빠를 닮아서 생각해 본 거야.
아빠도 겁쟁인가?
아빠도 미리 겁먹지 말고 씩씩해지면 좋겠어.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남을 테니까.
아빠, 많이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