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가는 배행(陪行). 난 마음으로 두 번의 배행을 나섰다. 한 번은 시어머니를, 또 한 번은 아빠를 따라나섰다. 죽음을 향해 가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게.
처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시행착오처럼, 처음 시어머니와의 동행은 너무 모르는 게 많았고 여러 가지가 버거웠다. 해드린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내 안의 아이는 그동안의 일상이 정지되면서 어쩔 줄 몰라했었다.
이번 아빠와의 동행에서 난 좀 더 영리해지려고 했었다. 순간순간이 가장 좋은 상태임을 기억하고 추억을 많이 만들려고 했고, 말도 안 되는 요구도 들어드리려고 노력했다. 이별 후 내 안의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 돌아올 길을 글로 표시해 두었다. 헨델과 그레텔 동화의 헨델처럼.
후회 없이 아빠를 잘 보내드리고 그 후엔 써둔 글을 따라 뒤로 한걸음 한걸음 돌아가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가 돌아가신 지 보름이 다 되어가도록 아빠와 함께 울고 웃었던 내 안의 아이는 여전히 그때 그 자리에 서있다. 어김없이 삐그덕거리며 돌아가는 일상 안에서 울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뭐가 잘못됐을까?
아빠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습으로 길을 잘 떠나셨다. 아빠와 함께 걸으면서 난 철없이 깔깔거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딴짓을 하느라 아빠를 더 외롭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내 역량이 그만큼 밖에 안 되는 거라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 이런 글을 쓰고 있었다.
내 사랑아
네가 가는 길이 꽃길이었다면
난 너를 따라가지 않았을 거야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날 보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내 사랑아
너의 소리가 감미로운 음악이었다면
내가 듣지 않아도 됐을 거야
고통 안은 신음소리에 우는 날 보며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돼
내 사랑아
빗소리 사이로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은 황금빛 조명 보며
난 널 닮은 날 생각해
혼자 두고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내 안의 아이처럼 정지된 시간 안에 갇혀있던 난, 바다 닮은 하늘을 보다가 알았다.
아빠의 삶을 담은 내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더 깊이 있는 나로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난 앞으로 두 번의 배행을 더 하려고 한다. 아니 더 많은 배행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마지막을 향해 가는 걸음은 외롭고 슬프고 아프다. 난 철없음으로, 너무 웃겨서 흘리는 눈물로 그 슬픔을 덜어내고 싶다. 앞으로도 난 여전히 딴짓을 하느라 동행하는 이들을 더 외롭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족하면 부족한 모습 그대로 마지막 가는 이들의 걸음이 서럽지 않게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