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는 세상을 살다가
작년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면서 만났던 가을이 다시 왔다. 간암이셨던 아빠는 작년 가을부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셨고, 딱 1년 투병생활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난 그때 가을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었다.
'가을아~ 많이 여행하는 지금 이 시간이 언젠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면 네가 생각날 거야.'
아빠의 투병생활이 시작되면서 우리에게 아빠와의 동행은 여행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유람이나 휴식을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 여행.
주로 치료받던 병원이 강동에 있어서, 우린 한두 시간 걸리던 그 길을 오가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옛 기억을 되짚고, 좋아했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선물 같은 자연을 봤다. 소중함을 깊이 알아가는 시기였기에 더 아름다웠을까? 작년 가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어제 엄마 진료를 위해 강동에 있는 병원에 갔었다. 아빠가 치료받으시던 병원이라 곳곳에 아빠와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딸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휠체어 탄 어르신을 모시고 지나갔고, 우린 자연스레 아빠를 생각했다. 엄마는 우리 모습을 보는 줄 알았다고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난 진료실로 들어가신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짧은 글을 썼다.
지난 1년, 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울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울고, 날씨가 좋으면 햇살에 눈이 부셔서 울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주 수요일, 난 아빠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고 이렇게 적어놨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움켜쥐었던 손을 펴고
두 손을 마주치며 손에 묻은 슬픔도 털어낸 날.
대신
눈물이 많이 흐른 날.
2023. 9. 6
목요일 아빠 영정사진을 고르면서 잠깐 눈물이 났고, 그 후 울지 않았다. 임종의 순간에도, 입관을 보면서도, 화장터에서도, 지금도. 일부러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슬프지 않다. 아빠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된 사랑이 너무 감사할 뿐이다.
그 사랑은 동생의 글에 잘 나와있다.
신의 사랑도, 아빠의 사랑도 다함이 없는 사랑이다. 상상도 못 했던 사랑. 돌아보면 안타깝고, 자책하고, 흔들렸던 몸짓을 신은 춤으로 만드셨고 슬픔의 눈물을 노래되게 하셨다.
얼마 전 아빠가 없는 추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가족들이 짧은 여행을 갔었다. 제부가 받은 사망조의금으로 경비를 사용해서 그런지 난 그 여행이 아빠가 준비한 선물 같았다. 그 여행이 끝난 후에도 왜 그런지 난 아빠가 준비한 선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마음이다.
아빠는 이 땅에 딸 다섯과 손자들을 남기고 가셨다. 우린 아빠가 이 땅에 남긴 선물이다. 거창한 선물은 아니어도 따스한 선물이고 싶다. 그게 쉽지는 않을 거 같다. 나는 온순한 사람도 아니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래도 언젠가 이런 고백을 하는 순간이 오길 기대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선물로 보내졌는 지도 모른다. 만나게 되는 이들과 함께 기쁜 오늘을 보내면서 선물로 살아가면 좋겠다. 선물로 살아갈 때, 가고 없는 날들은 하늘을 수놓은 구름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아름답고, 다가올 날들은 신실하신 이의 언약으로 하늘의 별처럼 빛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