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모양 초록잎이 그늘을 만들어 주며 아무리 붉은 꽃을 사랑한다 해도 이들은 이별을 해야만 한다. 아마 꽃이 먼저 질 거다. 더욱이 이 꽃은 백일만 산다는 백일홍이다. 이별을 직감한 듯 백일홍은 활짝 피어있다. 초록잎에게 기억될 마지막 모습을 위해.
열흘쯤 전 목사님 내외분을 모시고 아빠 면회를 갔을 때 아빠는 꿈을 다 이뤘다고 하셨다. 그 표현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특별하지 않다. 우리도 가끔 여한이 없다는 말을 사용하니까.
그런데 우연히 꽃잎은 말라비틀어졌는데 씨가 빼곡히 박힌 해바라기와, 그 아래 일부러 눈, 코, 입을 만든 거처럼 구멍 난 초록잎을 봤다. 유난히 해바라기를 좋아하시는 아빠. 한평생 아빠의 애씀이 꽃잎 마른 해바라기 되어 마음을 적셨다. 그리고 '이제 정말 이별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아래 글을 썼다.
예쁜 꽃잎 떨구고
씨앗만은 놓치지 않으려는
너의 몸짓에
왜 눈물이 날까?
흔들림으로 전한
네 얘길 다 듣고
떨어지는 눈물
고스란히 받았을
어린아이 작품처럼
삐뚤삐뚤
눈, 코, 입 뚫린
그 아래 초록잎
초록잎의 삐뚠 입이
네가못다 한 말
다 전하면
정말 끝일까 봐
그 짝짜기 큰 눈에
네가 담겨
외면한 너의 슬픔
보게 될까 봐
도망치듯
바라본 하늘
노을의 붉은빛 타고
슬픔이 질척인다
작년 5월 말부터 난 당장 아빠가 어떻게 되시는 양 징징거리며 글을 썼었다. 오랫동안 이별을 준비한 셈이다. 우린 매 순간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라고 생각하며 아빠와 최선을 다해 행복하려고 노력했다. 살아계실 때 잘하고 돌아가시면 아무 미련을 갖지 말자고. 지금 아빠가 당장 돌아가실 만큼 위중한건 아니지만 이별의 순간을 생각하며 난 적잖이 당황했다. 연인에게 이별통보를 받고도 속마음은 아닐 거라며 연인에게 질척거리는 사람처럼 현실부정을 할거 같은 마음이 들어서. 난 내가 기억하는 한 한 번도 누군가에게 질척거려 본 적도, 현실을 부정해 본 적도 없다. 내겐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마음이 있었나 보다.
난 아빠가 오래 사시길 바라는 게 아니다. 죽음 후에는 주님 품에 안기실 테니까 죽음을 향해 가는 길에 외롭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좋은 여사님을 붙여주셔서 아빠의 말동무가 되어주시며 섬세하게 챙겨주시지만 내가 미처 못한 그 무엇이 있을까?
난 용건 없는 전화통화를 잘 못한다. 그래서 무료하실 아빠에게도 전화를 못한다. 아빠에게 안부를 묻는 것이 용건이 될 수 있지만 그건 아빠가 기대하는 통화가 아닐 거 같다. 아빠를 언제 보러 간다거나 언제 집으로 오자거나 그런 내용이라면 당장 전화를 할 수 있다. 통화보다는 그냥 잠깐 얼굴만 보더라도 가는 게 낫다. 얼굴을 못 봐도 그곳에 가는 게...
코로나로 면회가 제한되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빠 병실에서 길이 보였던 것이 생각났다. 여사님과 통화를 하면서 길에서 손을 흔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아빠에게 우리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녀왔다. 우리는 아빠를 볼 수없었지만 아빠와 여사님은 우리를 보며 통화를 했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아빠 말씀이 생각나서 웃었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방법은 찾으면 된다. 면회가 제한되는 걸 우겨서 갈 생각은 없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된다. 우린 잠깐 아빠와 통화를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질척이는 슬픔을 조금 털어내며.
제목의 사진은 요양병원 앞에서 찍었다. 사진의 모습이 우리와 아빠 같다. 우린 언젠가 예쁜 이별을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