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요양병원의 면회제한 때문에, 아빠가 계신 병실 앞 길가에서 손을 흔들며 통화를 했었다. 그 덕분에 그다음 주엔 병원 측에서 배려해 주셔서 두 번 면회를 했다. 그리고 3일 후인 지난 수요일 우린 또 면회하겠다는 말을 못 하고 병실 앞에서 손을 흔들며 통화를 했다. 그때는 전과 달리 여사님께서 아빠 침대를 옮기시고 창문까지 닦아주셔서 우리도 어렴풋하게나마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아빠는 거의 말씀을 안 하셨고, 누가 왔는지도 기억을 못 하셨지만 "또 올게"라는 우리의 말에는 꼭 "응"이라고 대답을 하셨다.
그리고 토요일, 가족 모두 아빠를 보고 가시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는 황달이 심해지셨고, 소변도 혈압도 약물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셨다. 주말 면회 후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다들 아픈 마음으로 월요일을 보냈다.
머리로는 그 결정이 맞다는 의견을 내고 서로 동의했지만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 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저녁을 먹고 15분 거리에 사는 조카에게 약을 갖다 주러 나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기는 사람처럼 느린 걸음을 걷다가 전날 형부가 사준 전어구이 사진을 봤다. 어디에라도 집중해야 할 거 같아서 전어구이 사행시를 생각했다. 당황스러울 만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기껏 생각한 게 이거다.
전방주시 잘해야지
어머 사고 날뻔했잖아
구속되고 싶은 건 아니지
이런 칠칠이
전우가 아니에요
어머니는 더욱 아니죠
구분해야죠
이렇게~ 넌 내 사랑
억지 개그와 어정쩡한 낭만. 그래도 사행시를 생각해 내며 웃었다. 안 거쳐도 되는 공원을 거쳐 2시간 만에 집에 들어왔다. 씻지도 못하고 누웠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아빠가 의식을 잃어가신다고.
한밤중에 몇몇 가족들이 모이고 목사님이 오셨다. 장례를 미리 준비하시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빠는 깊게 주무시는 것 같았다.
꼬집고 건드려도 반응이 없던 아빠는 지금 눈도 뜨시고 일차적인 반응도 하시지만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시고 강심제와 이뇨제로 버티고 계신다.
갈한 나의 영혼을
생수로 가득 채우소서
피곤한 내 영혼 위에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저 십자가의 강가로
내 주의 사랑 있는 곳
내 주의 강가로
아빠에게 계속 들려드리는 찬양이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 갈한 영혼, 피곤한 영혼이었던 아빠.
난 아빠가 오래 사시길 바라지 않는다. 지금의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난 아빠가 어렸을 때 받지 못한 사랑을 지금의 시간으로 채워고 외롭지 않게 이 땅의 삶을 마무리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기쁨으로 하나님 품에 안기시길.
오랫동안 이별을 준비해 왔음에도 여전히 순간순간 눈물이 흐른다. 그래도 아빠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하실 것을 믿기에 잘 기록해 놓고 훗날 더 많이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