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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yoonlee Nov 01. 2024

세상을 움직이는 힘, 그리고 내 안의 힘

14산 비학산(2019년 2월)

초미세 먼지가 폐부를 찌르도록 심한 날이었다. 그래도 산에 갔다. 초미세 먼지는 어디에 있어도 피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숨을 들이쉴 때마다 보이지 않는 독이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하는 기상예보를 믿을 수 없게 하늘은 맑고 파랬다. 산에는 분명 해독작용을 일으키는 기운이 있다.

긴장감이 도는 파주의 민통선 부근에도 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그중 하나의 산 비학산(飛鶴山)은 이름처럼 학이 나는 모습이다. 우리는 유명한 초계탕 식당에 차를 세우고 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높은 산(450m)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았고 군데군데 눈이 있어 조심해서 걸었다. 하나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려오면 또 봉우리가 보였다. 세어보니 모두 열일곱 개였다.

 인접한 큰도로의 소음이 걸러서 들리고 인가가 있는 들머리는 동네 산 같은 느낌이지만, 삼봉산을 지나 비학산 정상에 갈수록 산은 깊고 고요했다. 우리가 소복하게 쌓인 마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내는 바스락 소리가 숲의 정적을 깼다. 도시에서 가까운 산인데도 아주 먼 곳에 온 기분이 들었다. 장군봉에서는 북한산 봉우리가 아스라이 보였고, 북쪽으로는 개성의 송악산 정상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능선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 겨울 두서너 번 산행하고 나니 어느덧 봄이 아주 가까이 왔다. 아직 새싹이 움트지는 않았지만, 한결 부드러워진 나뭇가지가 낭창거렸다. 얼었던 땅은 푹신하게 풀렸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훈훈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추위로 웅크리고 있다가 천천히 기지개를 펴는 산이 기특했다.

우리는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4가지 힘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주를 움직이는 힘의 법칙인 중력,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을 책임지는 전자기력. 극미 세계를 구성하는 약력과 강력이다. 그중 가장 미약해서 잡히기 어려운 중력파를 우주에서 최근(2016년) 발견했으니 인류는 이제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적인 힘의 존재를 모두 알아냈다. 머지않아 4가지 힘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을 알아내면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 밝혀질 것이다. 주인공 과학자가 중력을 제어할 방정식을 발견하고 “유레카”라고 외치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하지만 작은 세상인 우리의 몸과 정신에서 작동하는 힘의 원리는 이미 스스로 터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산에 가서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사람의 일과 상관없이 편안한 능선을 바라보고, 온전한 숲이 내어주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내 안의 힘의 정체를 파악한다. 그리고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낙관한다. 신비한 힘의 작용을 이성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곳, 그곳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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