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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Kay Oct 22. 2021

왜 아이를 갖는가? (상)

부모는 이기적이다?!

나의 글 처음부터 쓴웃음을 짓게 만들기는 하지만, 우리는 아이가 노동의 자산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 아이에게 투자를 해야 하는 즉, 아이가 부채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개인의 행복지수와 균형을 이루는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해진 지금, 아무런 준비와 생각 없이 아이를 낳게 된다면… 경제적이고 실질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엄청난 부채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 쓰디쓴 양육의 현주소이다.  실로 경제적으로 조화로운 삶에서 나오는 행복지수는 당연하게 떨어지게 될 것이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삶에 완전한 독립과 나만의 생활을 원하는 독신자를 꿈꿨었다. 한평생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 넷을 뒷바라지했던 친정엄마를 보고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자랐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나는 20대 중반 일찍 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나 못지않게 자신의 영역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재미교포였기 때문에 결혼을 해도 나의 독립적인 활동과 생활 영역을 간섭당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댁이나 친정의 간섭이 없었기 때문에 오롯이 우리 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다른 가족 구성원을 신경 쓰기 이전에 오롯이 우리 둘의 관계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둘이 함께 경제활동을 해서 가계를 같이 꾸려나갔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으나 경제적으로 비교적 자리를 빨리 잡을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각의 생활 패턴이나 하고 싶었던 일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를 갖고 싶을 만큼 그렇게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둘이 항상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던 이유는 둘만의 균형 잡힌 삶이 행여라도 깨질까 봐 두려웠었고 경제적으로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까지 가져가야 할 만큼 여유도 없었었다.


아마도 요즘 비혼 주의자들이나 딩크족들 모두 그 당시 우리와 비슷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충실하고 여기서 발란스 된 라이프를 원하였던 것이었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큰 책임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싶지 않았었다.


아이를 좋아했지만 왜 아이를 갖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찾기까지는 결혼하고 10년이 조금 안되어서란 시간이 흐르고 난 후였다.  솔직히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아이를 가진다는 책임감의 무게에 대해서 반려자와 생각했을 때 “이제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시기, 그때가 우리 커플에게는 바로 아이를 생각할 수 있는 시기라 생각하고 그때부터 아이를 가지려 노력했었던 것 같다. 늦게 임신을 준비하느라 많이 힘들었지만 왜 아이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답은 없었다. 난임을 겪으면서  나와 남편의 관심사는 아이를 갖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난임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구체적으로 왜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의 아이를 너무도 가지고 싶다는 갈망에 이끌려갔다.


결혼 후 12년이란 시간이 흘러 우리의 보물 같은 쌍둥이들이 태어났다.  내가 쌍둥이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참으로 부모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것도 그들의 의지가 아닌 나와 반려자의 의지였고, 아이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결국 부모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번식해야 하는 종족인데 이 "이기심"으로 인류가 번식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내가 자식을 위해 어떠한 희생을 하였 건 간에 그건 순전히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자의건 타의 건간에 본인의 결심과 의지이며 아기를 방관하건, 미워하건,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포기하건, 너무 사랑하건, 모든 건 다 부모의 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방관을 해도 이기적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하더라도 그건 자신의 마음이 행복하기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서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관하는 이기심은 사회로부터 질책을 받는 이기심이며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이기심은 사회로부터 좀 더 인정받는 이타적인 이기심이 아닐까?   ‘내가 너를 위해 어떻게 희생했는데…’ 이것은 나의 희생을 통해 상대방이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 즉 그 희생을 통해 결국 나의 만족감을 얻는 이타적인 이기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를 위해 내가 희생해도 난 행복하다.  사회적으로는 희생하는 고귀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칭송받지만 결국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행복하다.  참으로 고귀한 이타적인 이기심이다.  그래서 인간은 무한히 이기적인 존재이며 너무나도 이기적인 이 마음으로 계속해서 종족번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결국 왜 아이를 갖고 싶은가란 질문은 ‘나와 내 남편이 원해서’란 아주 심플한 답으로 귀결되었다.  결국은 우리 커플의 이기심으로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며 이 아이는 우리의 이기심의 산물이란 결론을 내렸다. (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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