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Kay Feb 02. 2022

당신이 정의한 가족의 중앙엔 누가 있나요? (상)

명절에 며느라기를 보고...

명절에 TV에서 "며느라기"드라마를 하였다. 드라마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주위에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금방 몰입해서 보았다. 가깝게는 나의 형제부터 시작해서 지인까지 모두 다 시월드 이야기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게 "사랑과 전쟁"의 드라마가 탄생된다.


나는 이 시월드를 실감 나게 겪고 살았던 엄마 밑에서 자랐다. 시부모님을 한평생 모시고 사셨던 엄마는 삼대독자 외아들에다가 효자인 아버지와 네 남매를 기르느라 시월드에 한이 맺힌 분이셨다. 형제들은 나를 포함한 딸 셋에 막둥이 아들 하나였는데 나의 형제의 구성만 보더라도 아들을 낳아야 했던 엄마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그래서 난 어렸을 때부터 시월드를 겪으면 안 된다는 살아있는 조기 교육을 체감하며 자랐다. 나는 다짐했다. 결혼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절대로 시월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지 않겠다고...


그러한 나의 다짐은 나의 남편으로 인해 결혼 후 20여 년이 넘도록 지켜지고 있다. 나의 남편은 재미교포인데 얼굴만 한국인이지 한국적 마인드가 없는 외국인이다.  내가 연예하면서 남편에게 끌렸던 이유 중에 하나는 시댁에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남편은 '오롯이' 내편이었다.  남편과 결혼 이야기가 오가면서 시댁도 고분고분한 며느리가 아닌 것에 달갑지 않으셨지만 남편은 무조건적으로 내편이었다. 그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시댁이나 친정에 어떠한 일이 생겨도 남편은 무조건적으로 내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편인 남편과 결혼 초창기 때 가장 많이 싸웠던 부분은 바로 나와 남편의 가족의 정의가 다른 것에서 시작되었다.  결혼한 후에 나의 가족에 대한 정의는 "기존의 나의 친정식구에 남편과 남편 식구를 더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남편의 가족의 정의는 "나와 남편"이었다. 



결혼 초창기 때 나는 효녀 마인드가 강해서 친정 부모님을 잘 챙겨드렸는데 그것을 남편은 굉장히 못마땅해했다. 그때마다 강조하는 건 '너의 가족은 너와 나야. 그런데 내가 왜 부모님보다 후 순위야?'라는 것이었다. 난 '한국적인 마인드와 외국적인 마인드랑 달라서 그런 걸까?'라고도 생각했었다. '아니 어떻게 부모님 이전에 남편이야?'라는 고민을 한적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든 시월드의 며느라기 한의 시작은 아내 이전에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는 남편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부모님이 우선순위라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어떻게 보면 남편에게 사위라기의 한을 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그 시절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친정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는데 월급이나 보너스를 털어가면서 친정을 챙겼던 과한 효녀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둘째 딸이 더 큰딸같이 가족을 챙긴다란 말을 무의식 속에서 즐기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효녀가 아니라 친정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은 내 욕구'였다. 그 욕구를 위해 내가 남편을 희생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친정을 방문하면 난 엄마 아빠의 말에 고분고분했고 그것이 옳건 그르건 남편이 따라주길 바랬고, 남편의 입장에서 서질 않고 대신 남편을 설득하려 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시월드를 겪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를 지켜준 남편에 입장에선 참으로 배은망덕한 행위였다.  


즉, 정리해보면 이 모든 며느라기와 사위라기의 시작은 가족의 우선순위에서 나와 나의 반려자 이전에 부모나 자신의 친정, 시댁 식구를 먼저 놓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반려자가 아닌 부모나 다른 식구들을 먼저 우선순위에 놓는 것은 자신이 인정받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시간 후에 비로소 깨달은 것은 결혼에서 가장 최우선 순위를 차지해야 하는 것은 나와 내 반려자이며 부부는 항상 가족의 최 중앙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이러한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고 남편하고 오랜 기간 다투면서 나의 잘못을 깨우쳤다. 그것이 바로 가족의 정의에 대한 부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인정하고 나는 가족의 우선순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모님이 중요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다. 가족의 정의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순위가 내 배우자로 달라진 것이다. 


이 가족의 정의가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태어나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의 중앙에는 부부가 있어야 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그 주위에 있어야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간다. 가족의 중앙에 부모님? 아니면 아이들? 이 차지하게 되면 가족 누군가에게 한이 생기고 분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며느라기를 보면서 많은 세대들이 가족의 정의를 다시 한번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만일 가족에 어떤 분란이 지금 있다면 가족의 정의를 한번 되뇌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가족의 중앙에는 누가 있는지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새로운 놀이터: 메타버스의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