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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Kay Dec 10. 2021

수영대회 왜 참가해야 하나요?

아이와 일주일간의 설득 과정

수영대회는 토요일이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아이가 수영대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쌍둥이 중 첫째 아이는 타고난 운동선수이다.  신체적으로 근육이 잘 생기고 운동신경도 굉장히 빠르다.  달리기, 수영 등 본인이 빠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을 좋아한다.  

지난 학기엔 수영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하였었는데 우승뿐만 아니라 또래 아이들 중 기록을 세워서 5년간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수영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번에도 수영대회가 있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신청했다.  당연히 첫째가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친한 친구도 함께 참여한다 해서 아이도 큰 저항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주에 첫째에게 수영대회가 있다고 말했는데 의외로 아이의 반응은 단호했다.  "싫어. 대회 나가기 싫어."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과 나는 중간에 조금 더 설득하면 아이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남편과 적극적인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직접적으로 아이에게만 강요하기에 앞서 간접적으로 엄마, 아빠의 목표를 공유하면 아이들에게 좋을 수 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주말 저녁에 가족이 모두 자신의 목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우리 넷은 모여 앉아 엄마, 아빠의 계획을 함께 공유했다.  둘째 아이는 이야기를 듣고 야심 찬 계획을 냈다. 미술을 잘하는 쌍둥이 둘째 아이는 미술대회에 참여한다고 하였다.  우린 은근히 첫째 아이가 수영 대회를 참여하겠다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우리의 저녁 회의는 첫째 아이의 관심을 유도하는데 실패했다.


월요일 저녁, 나와 첫째의 긴 대화가 시작되었다. 

우선 왜 수영대회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지를 물어보았다.  첫째의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수영장 추운데 수영복 입기 싫어.', '토요일 쉬는 날인데 수영장 가서 수영하기 싫어.', '엄마, 아빠가 자꾸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단순하고 단호했다.

그래서 나의 설득이 시작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너희 보호자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진정한 행복을 갖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보통은 토요일 아무것도 안 하는데 네가 집에서 TV 보거나 오락하는 시간에 조금 더 가치 있고 너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엄마, 아빠가 말해주는 것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저번 수영 대회에서 이겼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그리고 친구들과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줬을 때 그 기분은 어땠는지? 그렇게 노력하고 얻어낸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토요일 집에서 TV 보고 오락했을 때 느끼는 기분하고 비교해 봤을 때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첫째는 자신이 친구들과 선생님한테 축하받았을 때 정말 행복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영대회는 참여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루 더 유예기간을 줬다. '그럼 엄마가 말한 이유보다 네가 수영대회를 참여하지 않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참여하지 않아도 좋아. 내일까지 왜 수영대회 참여하고 싶지 않은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엄마한테 이야기해줘.'라고 말하고 우리의 월요일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솔직히 내 대화에는 오류가 있었다. 아이가 저번 수영대회에서 행복을 느꼈던 것은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우승과 기록 경신에 대한 축하였다.  만일 아이가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내 말은 모순이 되어버린다.  즉 대회에 참여하는 의미가 아니라 승리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오직 이겼을 때에만 아이가 행복을 느낀다는 오류이다.  그래서 그날 밤 남편과 또 어떤 관점으로 설득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물론 '대회 나가면 너 좋아하는 것 사줄게' 하는 사탕발림이 제일 쉬운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아이가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해 본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 부모를 위해서 하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소리를 듣고 더 이상 쓰지 않는 방법이다.  그래서 솔직히 설득하는 과정이 요즘은 힘들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본인들이 생각하는 논리가 나름 있고 또 우리가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이 점은 참 좋다. 


화요일의 대화는 다시 내가 먼저 시작했다. 

'어제 엄마가 생각해보라고 한 것 생각해 봤어?'라고 물으니 또 단호하게  '잘 모르겠어. 그런데 수영대회 나가기 싫어.'란 대답만이 돌아왔다. 

결국 나의 따발총 같은 설교가 시작되었다. 

'엄마 아빠는 게으른 사람들을 싫어해.  게으른 사람들은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야. 지금 네가 누리는 모든 것들, 따뜻한 옷, 맛있는 음식, 편안한 아파트, 모두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만들어낸 거야.  엄마 아빠가 게을렀다면 이런 모든 것들이 불가능해. 우리는 네가 게으르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아.  네가 게으르다면 네가 갖고 싶은 옷을 사거나 갖고 싶은 것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해.  그런데 너는 지금 엄마에게 두 가지 게으른 모습을 보여줬어.  첫째는 수영대회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생각도 제대로 안 하는 게으른 모습을 보여줬고 둘째는 토요일 수영대회 나가는 것보다는 집에서 TV 보고 오락하고 싶어 하니까.'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첫째는 울음을 터트렸다. 

이 울음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자신이 생각했지만 수영대회에 나가지 못한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러운 것과  엄마가 자신이 게으르다고 말한 것, 그래서 자신이 나중에 잘 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서러움이었다.  

설교가 거의 아이한테 협박 수준으로 끝나면서 내 대화는 아이를 달래지도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얘기했나?'라는 생각에 우는 아이를 뒤로 한채 방을 나왔다. 


다음으론 남편이 아이를 진정시켜주기 위해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이야기한 후 다시 나와서 나와 이야기하였다.  


남편은 첫째와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고 했다.  

'아빠는 어렸을 때 대회에 나가는 것이 좋았지만 사람들이 날 보고 평가를 하는 것이 싫었어. 친구들이 날 보고 뭐라고 할지 아니면 선생님이 날 보고 뭐라고 할지 이런 눈들이 너무나 불편했거든.  네가 아빠를 닮았다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나가기 싫은 걸 거야.'

그랬더니 첫째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아빠 그거야. 바로 그거 같아.  나도 오늘 생각해 봤는데 뭔지 자세하게 몰랐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설명했다.

'어제 네 친구 민아가 뭘 입고 왔는지 기억나?'냐고 묻자 첫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지? 기억 못 하지? 사람들은 의외로 다른 사람들이 날 보고 평가하고 나에 대해서 생각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  너도 너랑 젤 친한 친구가 어제 뭘 입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잖아.  그만큼 사람들이 남을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그래서 내가 뭘 하든 남을 의식하고 남이 나를 계속 쳐다보고 날 평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있지 않거든.'

'그리고 또 아빠가 해줄 말은 네가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모두 "고스트"라는 거야.  고스트가 뭐지? 무섭고 두렵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거든. 그런데 그 생각만으로 사람을 두렵게 만들지. 이럴 때 고스트로부터 계속 도망가면 이 세상에 없는 것에 대해 계속 두려움을 갖게 돼. 그러면 계속 그 두려움에서 살게 되고. 이럴 때에는 그 고스트로부터 맨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는 거야. 그럼 그 고스트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게 돼.  네가 생각하는 두려움이나 무서움은 실제로 직면하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널 평가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은 고스트일 뿐이야. 실제 그것을 직접 보게 되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 그런 생각만으로 두려운 것은 직접 대면하고 없다는 것을 알게 돼'


두 번째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는 잠이 들었다고 한다.  '고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내가 펑펑 울려놓은 상태에서 아빠가 본인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것이 잘 먹힌 것 같다고 했다.  굿 캅 배드 캅 전략이 잘 먹혔다.  역시 남편다운 것은 오늘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하루 종일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대화였다.  


남편도 대회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들의 눈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말했다. 본인의 역량을 그냥 발휘하고 싶었지 그것을 가지고 남들이 뭐라고 평가하는 것이 젤 싫었다고 했다.  그런데 본인이 깨달은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왈가왈부할 만큼 자신에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에 부응하기 위해 더 잘해야겠다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의 기준에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며 이는 남을 실망시키기 싫다는 내 '자존심'인데 이것은 평생 자신이 도전하거나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위해 대회에 많이 참여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남편의 많은 생각과 철학이 담긴 주옥같은 이야기이지만 지금 아이가 정확히 이해를 못 했더라도 언젠가는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역량을 방해하는 자존심을 버리기 위해 대회 참여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라는 좋은 논리가 생겼다. 


수요일, 나는 새 논리를 가지고 아이를 다시 설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어제 아빠랑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수영대회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평가받는 것이 싫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은 "고스트"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고스트"를 직면해야 한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강조하면서 만일 평가받는 것이 두렵다면 그것이 없다는 것을 직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또다시 수영대회를 나갈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수영대회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더 이상 강요하지 못하고 대화를 종료하였다. 


목요일, 다시 한번 나는 수영대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왜 수영대회에 나가기 싫은지를 다시 물었다. 


'엄마 나 수영 연습을 많이 안 해서 나가기 싫어.................'


세상에......... 빙고!!!!!


솔직히 코로나다 감기다 요즘 너무 극성을 부려 아이가 꾸준히 나가는 수영 레슨을 잠시 쉬고 있었다.  하지만 수영대회는 친구들도 나가고 워낙 수영을 잘하는 아이라 난 따로 연습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지난 수영대회 나가기 전에는 수영 선생님하고 시간이나 출발 다이빙 연습 등 나름 열심히 연습했었는데 이번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아이는 이 말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말이 엄마와 아빠를 설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왜 수영대회 나가기 싫은지에 대한 아이의 생각, 본인이 연습을 안 했으니깐 당연히 나가고 싶지 않았겠지.  그런데 나는 무슨 엄마가 연습도 안 시키고 그냥 친구들 나가니깐 그리고 조금 쉬었어도 수영 좋아하고 잘하니깐 하는 이런 태만한 생각으로 아이를 여태껏 밀어붙였는지 한심할 따름이었다.  


아이가 진심으로 대회에 안 나가는 정확한 이유를 말해줌이 장하고 기특함이 밀려옴과 동시에 준비도 안 시켰으면서도 아이를 막 밀어붙이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엄마의 행태를 한심해하면서 이번 수영대회의 긴 대화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아이의 선생님한테 이번 수영대회는 빠진다는 이메일을 보내고 이번 사건은 종료되었다. 


참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느끼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한마디 하는 것, 아이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참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또한 실감 나게 느꼈다.  

어쩌면 정말 아이는 저절로 크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옆에서 기다리면서 입을 꼭 다물고 지켜보는 것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하는 좋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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