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의 역습

일가족 수몰 참사 부른 반지하의 유래

by 윤경민

반지하의 역습


시간당 140mm의 기록적인 물벼락이 떨어진 날, 일가족 3명이 끔찍하게 생을 마감했다.

참변을 당한 곳은 다름 아닌 가족의 평소 안식처였던 집이었다.


"엄마 물살에 현관문이 닫혀버렸는데 수압 때문에 안 열려"

희생자가 모친과의 통화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날 저녁 쏟아진 폭우는 저지대로 흘렀고, 거센 물살은 반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쏟아져내렸다.

창문을 타고, 현관문 틈을 타고 들이치기 시작한 빗물은 삽시간에 반지하 주택을 집어삼켜버렸다.


필사의 탈출 노력은 거센 수압에 가로막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겨우 한 사람 엎드려 빠져나갈 만한 크기의 창문도 방범창에 막혀 무용지물이었다.


40대 다운증후군 언니와 한 살 아래 동생, 그리고 그녀의 10대 딸은

그렇게 차디찬 빗물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비극의 반지하 주택.

몇 년 전 오스카상을 거머 줬던 영화 '기생충'이 오버랩되었다.


영화에서는 송강호 가족이 빗물이 들어찬 반지하 주택에서 탈출에 성공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누가 이 비극의 수몰 희생을 만들어냈는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반지하주택은 32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지하 주택의 유래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으로 대치하는 휴전 상황에서 정부는 전시에 방공호 또는 진지로 쓸 목적으로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건축법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창고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이들이 지하실에 세 들어 살기 시작했던 것.


급격한 수도권의 팽창에 주택이 모자라다 보니 정부도 이를 묵인, 1990년대 초반에는 아예 합법화되었다.


반지하주택이 급증한 이유는 또 있다.

일반 주택은 4층까지만 허가가 나는데 반지하는 층수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셋방을 더 만들어 수익을 올리려는 건축업자와 집주인들이 앞다퉈 반지하를 포함한 주택을 지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컴컴하고 습하고 축축해 곰팡이가 많이 피는 반지하 주택.

하지만 상대적으로 싼 집세 때문에 저소득층에게는 안식처가 되어준 반지하.


BBC를 비롯한 외신들은 이를 알파벳 'banjiha'로 표기하며 영화 '기생충'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남의 화려한 빌딩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많은 이들이 이런 반지하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정부는 이번 일가족 참변을 계기로 반지하 참사를 막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집중호우가 저지대 취약계층의 목숨을 더 이상 앗아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수관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평소 배수관과 우수관 정비를 게을리 말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반지하 주택을 못 짓도록 건축법을 바꿔야 한다.

또한 기존의 반지하 주택에는 정부와 지자체 예산으로 차수막 시설을 설치하는 등 근본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의 일가족 수몰의 비극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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