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모 형무소를 출발한 구급차는 수도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대형 트럭에 올라탄다. 트럭에는 나가노 유키오의 절친이자 동지인 이철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 많았네, 친구"
나가노와 노리코는 이철훈이 미리 대기시켜 놓았던 벤츠 SUV 차량에 옮겨 타고 다시 트럭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린다. 한 시간 반 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내 일본 독립단 아지트였다. 번화가 골목길 안쪽 녹슨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니 마치 군부대의 지하벙커 사령부처럼 꾸며져 있었다.
"언제 이런 곳을 만들었어?"
놀란 표정으로 묻는 나가노에게 이철훈은 답했다.
"자네가 체포된 직후에 노리코와 함께 구출작전을 세울 곳이 필요해서 내 지인의 사무실을 빌린 거야.
"그나저나 좀 이따 중요한 손님이 올 거야"
"손님?"
"새로운 동지예요"
노리코가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치며 거들었다.
"도대체 누군데?"
"이따 보면 알 거야"
"띵동!"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왔군"
문을 열고 들어선 건 야마구치 히데오였다. 다부진 체격에 검게 그을린 얼굴, 강인한 인상. 손가락 두 개가 없고 용 문신이 온몸에 새겨진 야마구치 히데오. 일본 열도 지하세계를 통치했던 실력자. 나가노는 예전 부도칸에서 한국 조폭 두목 공나석과 결투를 벌였던 야마구치의 모습을 떠올렸다. 10여 년이 흘러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였지만 역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위엄과 살기가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자네가 독립군을 조직한다고?"
야마구치가 중절모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나가노에게 손을 내민다.
"나도 끼워주게. 이 야마구치 히데오가 개과천선해서 이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해주게나"
나가노가 감옥에서 지독한 고문에 시달리고 또 회유당하는 동안 이철훈과 노리코는 일본 독립군 조직에 나서고 있었다. 어떻게 들었는지 소문을 들은 야마구치가 두 사람을 찾아서 합류 의사를 밝혔던 것. 나가노는 중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비폭력 독립운동을 지속할 것인가,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할 것인가? 전자를 택하자니 희생이 너무 클 뿐 아니라 기나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후자를 택하자니 이미 일본인들의 혼을 빼놓은 총독부의 집요한 세뇌공작 때문에 무장 독립투쟁 조직을 구성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문득 한 얼굴이 나가노의 머릿속에 번뜩이며 떠올랐다.
"그래, 아키야마 막료장!, 그분이라면 나서 주실 거야"
내민 손을 잡지도 않고 혼잣말처럼 외치는 나가노에게 야마구치가 외친다.
"뭐라는 거야? 나와 함께 손을 잡겠다는 건가, 안 잡겠다는 건가?"
"앗, 죄송합니다. 당연히 함께 손잡고 독립투쟁을 펼쳐야죠. 아키야마 스케베상 아시죠? 전에 자위대 통합 막료장 지냈던 분. 전쟁 후에 포로수용소에 갇혔다가 전범으로 5년형을 살고 나오신 뒤에 자위대 조직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을 모셔오면 우리는 무장 독립투쟁을 본격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에 한 모임에서 그분을 뵌 적이 있는데, 저와 통하는 게 있었거든요. 말씀드리면 흔쾌히 받아주실 겁니다. 분명히. 어때요? 여러분. 그분과 함께 합시다!"
나가노가 뛸 듯 기쁜 표정으로 제안하자 모두들 반겼다.
공나석을 해치운 후 나석이 파 잔당과 경찰에 쫓겨왔던 야마구치 히데오는 꼬붕들을 하나둘씩 다시 모아 조직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한국의 지배가 계속되는 동안 일본 야쿠자가 설 땅은 없다고 판단했다. 재건하는 조직을 일본 독립운동에 합류시켜 나라부터 구해야 야쿠자도 살길이 생길 것이라고 야마구치는 생각했다. 배운 건 없고 폭력으로만 살아왔지만 조국 잃은 설움은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게 야쿠자들이었다. 나석이 파의 꼬붕으로만 지내다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위대 통합 막료장을 지낸 인물과 함께 하게 되다니 야마구치의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
나가노 유키오와 나가타 노리코, 이철훈 그리고 야마구치 히데오 네 사람 모두 아키야마 스케베와 합류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