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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25. 2022

집주인과 대화의 물꼬를 틔웠다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

책과 몽키스패너

머리맡에 책을 하나 두고 늦잠 자는 주말 아침에 가끔 읽는다. 비몽사몽일  방탄이나 고양이 릴스를 보면서 킥킥 대다 보면 잠이  깨지만 순삭된 시간에 현타가 몰려온다. 그래서 가끔 교호양을 차리고 싶을  ‘ 그럼 오늘은 책으로 시작해볼까하고 머리맡을 더듬는다. 쉽고 명쾌한 내용의 책이 아침에 읽기 좋다. 심오한 책은 밤에 보면 졸음이 쏟아져서 좋을지 모르나 같은 이유로 아침엔 이도 저도 안된다.


예를 들어 <소유냐 삶이냐> 책을 6 전에 중고로 샀는데 (글쓰기를 위한 교양을 위한 책이라고 해서), 세상에 아직도   읽었다. 머리맡에 두고 어떻게든 읽어보려고 했지만 겨울부터 읽은 책을 가을이 되어도  읽어서 차라리 다른 책을 뒀으면 두세 권은  읽었겠지! 하고 다시 책꽂이에 꽂았다는 슬픈 얘기가….


소유나 삶이냐 책상에 놓고 정자세로 읽으면   질문이  마음에 돌을 던져서  돌을 타고 수면 아래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는 훌륭한 이정표 같은 책이다. 헌데 이런 보물을 6 동안 수면제로 쓰다니. 아무래도 책은 성질 따라 읽는 방법이 따로 있구나 싶어서 언젠가 아빠의 책장에서 빌려(훔쳐) 왔던 데일 카네기의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 책을 책장  아랫칸에서 꺼냈다. 핑크색 형광펜으로 밑줄이  사정없이 쳐져있는데 아빠는 이걸 배워서 어디다 써먹었을까? 확실히 나한텐  써먹은  같다. 나는 아빠의 말을 단칼에 거절하는 쎄비지로 자랐으니까. 그래서 그랬나 아빠는 외롭게 집만 들었다 놨다 했다.


 책은 <영업의 정석>이다. 상대방이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을  다짜고짜 찾아가서 ‘쿵쾅쾅! 열라고! 열라고!’하는  아니라 조금 떨어져서 공깃돌을 던져보는 것이다. , , 저기요, 저기요, 하고.


집주인 박춘식이 너무 매정해서 마음이 많이 다쳤다. 2년 전 계약하던 자리에서 내가 이동네하고 옆동네에 건물이 엄청 많다고 자랑만 안 했어도, 맨날 어디 비싼데 놀러 가는 사진들로 카톡 프사를 도배하지만 않았어도 내 속이 덜 상했을 것 같다. 저렇게 돈이 많으면서 1달 10일 동안 4000만 원 마련을 못해? 그리고 두 달을 따질 거면 6월 20일이어야지 자기는 왜 제멋대로 6월 말에 준다고 하는데? 부들부들… 그런데 이 일만 놓고 보면 내가 늦게 통보를 한 건 맞고, 집주인이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거에 대해 모든 부동산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1)


어느 날 아침 문득 보니 바로 지금을 위해서 이 책을 읽고 있었나 싶더라. 그래서 <제3부, 사람을 설득하는 열두 가지 기술>을 펼쳤다. 이 중에서

3. 자기 잘못을 먼저 인정하라

4. 부드럽게 말하라

5. 상대방이 수긍할 대화를 택하라

6.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라

- 까지 읽고, 연락해서 전화 가능한 시간을 미리 알려달라고 했다. 박춘식은 맨날 ‘운전 중이에요! 문자로 하세요!’ 하고 팍! 끊으니까. 약속한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난 그때 주민센터에 몽키스패너 빌렸던 걸 반납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주차장 구석 뾰족한 콘크리트 벽돌에 엉덩이를 걸치고 1시간 반 동안 통화했다. 박춘식이 말을 할라치면 나는 말을 바로 멈추고 끝까지 다 들어주면서 ‘네 그렇죠, 제가 일찍 말씀드렸으면 좋았을 텐데요’ 허공에 고개를 조아렸다.  


결론은 박춘식은 새집 집주인이  사정을 봐주게 하라는 , 은행이 말을 바꿨으니 은행이  사정을 봐주게 하라는 , 그도 저도 안되면 어쩔  없이 내가 계약금 천만 원을 포기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말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얻은  하나도 없는 전쟁이었다. 엉덩이가 반으로 잘린  같고 뒷목도 뻐근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박춘식의 태도는 알게 되었다. 박춘식은 내게 갑질을 하거나 골려줄 생각은 없다. 그저 ‘ 6/30 돈을 준다하는 입장이고 ‘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 입장이다.


마지막 장 11. 극적인 연출을 하라 -는 아직 안 읽었을 땐데, 몽키스패너를 반납하지 말았어야 했나.




박춘식이 돈 떼먹을 사람 같지는 않다는 걸로 나의 고민이 해결되었나?

집을 나가도 돈을  돌려주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 그건 어차피 나가는 날에야 결정이 된다. 이번 주에 갑자기 나타나서 ‘이번  말에 이사 올게요!'  천사는 없을  같고. 집주인 말대로 결국 6월에라도 무사히 보증금을 돌려받고 이사하는 것이 이제는 현실적인 목표이다. 5/31 내가 저쪽 집으로 주소지를 옮기고 실제로 나가는 6/30까지   동안  집에 대한 소유권은 어떻게 행사해야 하지.  방에 어떤 장치를 걸어놓을  있을까. *2)


-등기 신고 : 이것은 초강수 방어. 은행도 부동산 사장님도 그건 집주인에게 반감이 생길 수 있으니까 안 하는 게 낫다고 하셨다.

-확약서 : 방이 끝내 안 나가더라도 6/30엔 돈을 돌려준다는 약속. 새 집주인 아저씨가 좀 불안해하시는데 확약서를 받아놓으면 나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누가 나 대신 전입신고 : 방이 비는 1달 동안 부동산 사장님이 자기가 이 집으로 전입신고해놓겠다고 제안해주셨다. 자기 집에서는 아저씨가 세대주이니 자기는 주소지를 옮겨도 자유롭다고. 고마워라. 부동산 사장님도 “원룸은 금방 빠지니 괜찮을 거예요~” 하면서 계약을 진행하셨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 이렇게 꼬일 줄은 모르셨겠지. 그리고 내가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못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가족 중에 전입신고해 줄 사람 없냐고 묻지도 않으셨다. 사려 깊은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 이 방법에 힌트를 얻어서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5/31에 나는 새 집으로, 엄마는 이 집으로 전입신고하고, 6/30에 내가 이사하면 엄마는 다시 본인 집으로 전입신고.


복잡하다 복잡해. 돈 떼일까 봐.



1) 이 글을 쓰며 알았다. 2020년 10월에- 이사 의사를 계약 만기 1달에서 2달 전에 고지하도록 법이 개정되었는데, 이 전에 계약한 세입자는 1달 전에 말해도 되는 거였다!!!!!! 으 열받아.

2) 미리 보증보험을 들어놓으면 이미 이사를 나갔는데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돌려줄 때 보증보험에서 먼저 돈을 받을 수 있다. 보증보험은 가입할 수 있는 시기가 계약 초기로 한정되어있고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니까 처음 부동산 계약할 때 하면 더 좋다.


1,2번 모두 챕터 3에서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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