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객전도
남들처럼 케리어도 없이 가방하나 메고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나루터에 오셨습니다.
울산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분입니다.
추운 겨울길에 얼은 몸을 녹이도록 드린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결혼식을 연기하면서 신혼집을 구하는 시기도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로 향하려던 신혼여행도 연기되었고요.
하지만 생각보다 코로나가 길어지니 결혼을 계속 미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의 축하와 부러움을 받으며 결혼을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과거에 신혼집을 구입하려던 돈으로는 집을 살 수 없게 되었답니다.
결혼식을 미룬 사이에 집값이 폭등을 한 것이지요.
여행을 위한 계약금도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한동안 마음에 병이 왔다고 합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자그마한 체구와 앳된 얼굴을 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안쓰러움 마음이 한가득 들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괜찮다고 합니다. 남편의 사랑이란 대답을 예상하고 비법을 물었습니다.
예상 외의 답변을 주었습니다. 부동산 까페 덕이라고 하네요.
부동산 경제에 관한 자신의 무지함을 탓하며 관련 까페에 가입을 하게 되었답니다.
아무래도 좋은 부동산을 찾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여행을 좋아하는 성정입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곳에서 자신처럼 걷는 여행을 좋아하는 동갑내기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결국 둘은 부동산을 핑계로 친구와 걷기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울증이 곁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곳 나루터에 들린 것도 걷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장으로 세종에 왔지만 돌아가는 기차를 예약하지 않고, 이곳 나루터를 예약한 것입니다.
울산의 친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세종으로 올라와서 함께 걷기로 했답니다.
아내도 부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혼자는 무서워서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며.
누가 알았을까요? 집을 구하지 못한 대신에 이렇게 멋진 친구를 얻게 될지 말입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의 예상도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우울증 치료에는 다정다감한 남편의 힘이 컸습니다. 저희 부부처럼 두분의 성정도 반대라고 합니다.
남자는 안의 기운을 받아야 힘이 나고, 여자는 바깥의 기운을 받아야 힘이 난다고 합니다.
만약 아내가 바깥의 기운을 받기 위해 시도하는 여행을 남편이 반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안의 기운을 받아야 힘이 나는 남편의 입장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주객전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의 처지가 뒤바뀌었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보면, 소설 토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울적하지 않을 때가 있어야 말이지요. 이 고장에서 울적하지 않은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소.
주객전도라더니 위로를 받아야 할 분이 위로를 주시는군요."
함께한 날, 저희는 객이 되어 이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귀한 이야기 참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