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많은 남자는 만나지 말라고
올초에 가족끼리 드라이브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어느 구간을 지나는데, 오빠랑 엄마가 갑자기 이 근처에 선녀님이 계신다고 했다.
그래? 좋은 말씀 해주셨어?
궁금해서 물었더니, 돈을 내준다면서 갑자기 유턴했다. 복비에 돈 쓰는 거 아까워하는데, 인생도 착잡하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주는 타고난 팔자라, 수차례 물 많은 남자는 만나면 안 된다. 는 말을 들었다.
철학원 선생님도 말했다.
물 많은 남자 만나지 마.
나무는 물에 닿으면 썩어.
축 늘어진 나무의 이미지를 생각해봐.
우울해져…
선녀님도 다시금 상기시켰다.
물 많은 남자 만나지 마.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번에는 반문을 해봤다.
물이 어째서요? 잔잔하고 고요하잖아요. 물길처럼 맑을 수도 있고요~
깊은 물을 연상시켜봐.
밑에 뭐가 있는지 몰라.
물 많으면 음흉해.
도령님도 말씀하셨다.
물 많은 남자 만나지 마.
물을 피해야 해.
급류에 휩쓸리려나, 이쯤 되면 웃겼다. 그러다가 오늘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데, 너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서 계속 연애사업이 폭망 하는 거라며, 잊어버렸던 과거를 들췄다.
사회성이 제법 좋았다. 우리 부모님을 보고 싶다며, 먼저 밥을 먹자고 제안했었다. 패기 있길래,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가 이따금 끄집어낸다.
2015년 여름, 홍대에서 버스를 타고 어딘가 향하고 있었다. 도로는 세월호 집회 때문에 정체되어 있었다.
그는 말한다.
다 끝났는데
뭔 진상규명이야.
저게 뭔 민폐야…
당시, 이렇다 할 주관이란 게 없었지만, 어떤 현상과 누군가 뱉은 말은 시간이 지나도 끈질기게 나를 따라온다. 세월호 사건은 동떨어지게 느껴졌지만, 내 인생에서 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기 때문이다.
질투라는 감정은, 이 관계에서만은 내가 주인공이길 바라!라는 기대감을 불식시키며 단숨에 조연으로 만든다. 썩 유쾌하지 않다.
어느 날 저녁, 냄새가 나는, 묘한, 여사친과 술 마시러 간다고 했다. 미리 솔직하게 말하면, 서로에게 자유를 주는 규칙이 있었다. 그날은 유독 질투라는 감정과 씨름하고 있었다. 계-속 답장이 없다가, 7시간이 지난, 새벽에야 연락이 왔다. 골든타임은 그렇게 지나갔고, 아침에 연락 와서 만났다. 그는 울면서 헤어지자고 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이었다. 일 년이 흐른 후, 그 여사친과 사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끝내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주지 않았다. 진실을 삼켜버린, 심연의 바닷속은 깊고 의뭉스러웠다. 물 많은 남자는 피하라는 선녀님의 말씀이 일부분 수긍이 간다. 내 기억 속에 그는 여전히 (눈) 물기가 많고, 어린 모습으로 남아있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래도 고여있는 것보단
흐르는 게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