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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동 언니 Sep 17. 2024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오왠 (O.WHEN) - 오늘

나의 상태가 마음의 병임을 인지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대다수의 케이스들보다는 빨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벌써 세 번째 PT를 취소한 날이었다. 근손실에 울먹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몸 쓰는 것에 나름 재미를 붙여서 1년 정도 꾸준히 운동을 해오던 시기였다. 어떤 행사가 생겨서 일정을 조정한 거라면 스스로도 이해가 되겠는데 문제는 자꾸 당일에 수업 취소를 하고 싶어지는 데 있었다. 1:1 레슨이 대부분 그렇듯 내가 다니는 센터도 당일 취소는 환불이 불가능했다. 선생님과 얄팍한 친분을 쌓아오고 있었기에 두 번이나 횟수 차감 대신 무료 보강을 잡아주시기도 했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스케줄 근무를 하는 분께 그건 무례하고 무리한 요구이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그런 둘리는 아무튼 아니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꾸 취소가 잦아지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고, 회식이나 특별한 가족 사정 때문도 아니고 운동이 싫어진 것은 더더욱 아니고. 그냥 ‘힘들어서’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의 결석이 연달아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물먹은 솜같이 몸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PT 예약도 약속은 약속. 천근 같은 몸을 질질 끌고 운동을 하러 간 날들이 근 2달여간 계속 됐다. 어떤 날은 가기 전까지는 힘들다가 근력 운동을 좀 하다 보니 가벼워지는 날도 있었다. 또 다른 날은 도저히 직전에 해냈던 무게는커녕 기본도 할 수가 없는 몸상태라 선생님께 재활 마사지만 깔짝깔짝 받고 오기도 했다. 아주 가끔씩은 그래 할 수 있어!라고 육성으로 외치며 힘을 내어 센터로 돌진한 적도 있고. 그러다가 정말 도저히 안 되겠는 날들이 있었던 것이다. ‘힘들어 죽겠네’를 입에 달고 살면서 9할은 ‘힘들어’에 방점이 있었지만 1할은  ‘죽겠네’가 굵은 글씨로 다가왔다. 1할이었던 게 차츰 그 빈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정말 죽겠어서 어렵게 선생님한테 취소 연락을 할 때는 사람이 구차해졌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이 소중한 수업을 취소하고 싶지 않았는데 왜 취소해야만 하는지 구구절절 길게도 적었다. 엉엉 우는 이모티콘을 얼마나 남용했는지 모른다. 힘겹게 취소를 하고 나면 해방감과 동시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오왠 (O.WHEN) - 오늘)


그러고 보니 힘든 건 운동뿐만이 아니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이 힘들어서, 택시를 타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머리를 감으려고 숙이는 게 힘들어서, 머리를 감지 않거나 미용실에 찾아가 만원에 머리를 감겨달라고 하기도 했다. 당연히 친구들도 거의 못 만났다. 신경 써서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대부분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니 하루하루 회사일을 간신히 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회사일이 그렇게 힘든가. 물론 업무가 몰려있고 바쁜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딘가 이상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이 정도는 빡세게 살고 있지 않나. 왜 나만 이렇게 유독 힘들게 느끼는 건가. 회사에 얼마 없는 모든 체력을 쏟아붓는 것도 싫었다. 


뭔가가 잘못되고 있었다. 이 이름을 알 수 없는 ‘힘듦’ 현상을 해결해야 했다. 처음에 떠오른 원인은 신체 고장이었다. 한창 백신 후유증에 대한 말들이 떠돌 때였다. 내가 의사는 아니라 인과관계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묘한 시기에 백반증에 걸린 지인도 있었다. 검색 엔진을 붙잡고 이것저것 찾다 보면 청년들의 폐, 심혈관 질환이 늘었다는 괴담 같은 소식이 가득했고 하필 혈류 쪽에 이상이 생기면 기력이 없어진다는 게 주요 증상으로 꼽혔다. 그게 아니더라도 염증 수치가 높을 수도 있고, 갑상선의 기능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불안들이 피어오를 무렵, 스타트업 이직 후에 소홀했던 건강 검진을 큰 맘먹고 빵빵하게 받았다.


역시나. 건강은 좋지 않았다. 20대 중반 ‘이상 소견 없음’으로 종합검진 요약정리 페이지를 새하얀 백지로 만들었던 몸은 더 이상 없었다. 친구들은 혹부리 영감으로 부르기도 하던데. 여성 3종 세트인 갑상선, 유방, 자궁에서는 딱딱한 혹인 결절, 물혹인 낭종이 여럿 발견됐다. ‘수 개의 결절’ 혹은 ‘수 개의 낭종’이 주르륵 적혀서 이제는 종합검진 결과 첫 장이 빼곡하게 글씨로 채워졌다. 놀라고 씁쓸한 마음이 꽤나 오래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찾던 힘듦의 원인은 이 중에 없었다. 혹들은 암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계속 추적 관찰을 해야 하지만 지금 내 컨디션에 영향을 미칠 만한 존재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뭘까? 두 번째 원인 후보로는 과로를 떠올렸다. 나는 소위 말하는 갓생러였기 때문이다. 내가 뽐내며 붙인 별명은 아니고, 주위의 사람들 열에 아홉은 그렇게 부르곤 했다.  ‘God’ ‘生’이라고 적어보니 나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멋진 말이고 그냥 욕심이 많아 바쁘게 살았다. 주중에 다니는 직장이 있었고, 주말에는 틈틈이 어머니의 사업을 도왔다. 퇴근 후와 여가 시간에는 취미와 수익활동 중간 어디쯤에서 나름 헤비 하게 글을 썼다. 가장 많은 시간의 비중을 차지하는 회사는 초창기 꼬꼬마 스타트업이라 업무가 과중하기도 했다. 무엇 하나도 대충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잠도 쉼도 부족한 삶이었다. 그래, 나는 워낙 내 몸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캐릭터니까 어느 정도 마모가 되었을 수 있다.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사회에는 흔한 단어로 쓰이고 있을 때였다. 


과로가 원인이라면 간단해진다-라고 생각했다. 쉬면 되니까. 근데 쉬어지지가 않았다. 참 이상하게도. 쉬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불안하게 천장을 보고 누워있다가 아이폰을 붙잡고 밤을 새웠다.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나는 쉬어야 하는데! 여유롭게 쉴 시간이 없는데! 머릿속에 목소리가 많았다. 정말로 뭔가가 잘못되고 있었고, 이건 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16년에 발표된 ‘오왠’의 대표곡 중 하나 ‘오늘’의 가사에는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가 후렴에 세 번이나 반복된다. 나만 왜 이렇게 힘드냐는 원망이 역설적이게도 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대체 난 뭐가 그렇게 잘 나고 특별해서 남들보다 별 것 아닌 일로 힘들어하는 건지. 오왠의 부르짖음을 함께 하기 위해 반복 재생을 눌렀다. 노래의 초입이 들렸다. ‘새벽 4시 잠들지 않아’ 나 같은 놈이 여기 하나 더 있구나. 최소한 세상에 나 하나는 아니구나. 날이 새도록 잠 못 들고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나 왜 이렇게 힘드냐고 울고 있는 무지렁이가. 몇 날 며칠을 난 도대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답 없는 괴로움에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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