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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동 언니 Sep 14. 2024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이소라 - track 9

우리는 서로를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의 우울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타인과 뇌를 공유해서 완전히 동일한 감각을 수용할 수 있는 기묘한 세상이 오기 전까지 그건 필연이 아닐까. 내가 아무리 기가 막히게 내 감정에 대해 설명하고 상대가 아무리 뛰어난 공감 능력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결국 각자가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라는 필터를 거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완벽히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희망 사항이라는 거다. 그런 생각에 빠질 때면 걷잡을 수 없이 고독한 기분이 든다. 이게 어려운 말로 인간의 근원적 고독이라는 걸까?


비슷한 이유로 나는 자기 계발서나 자서전, 수기를 즐겨 읽지 않는 편이다. 멋진 인생을 산 사람과 그의 교훈을 존중하지만 그가 처한 상황과 가진 마음은 나의 것과 다르리라. 그런데 어떻게 그 조언을 듣고 내 삶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 책의 저자는 나에 대해 조금도 모르는데.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리가 없는데, 하릴없이 반짝거리는 조언이 다 무슨 소용인지. 가끔은 책을 읽다가 네가 뭘 알아!  하면서 던져버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수기를 읽지 않는다'고 외치던 나는 에세이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혼자 보는 일기도 아닌 에세이를 공개적으로. 그것도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우울증의 기록을 위해. 누구도 나를 완전히 알아줄 리 없고, 이 글을 읽을 이들의 마음을 내가 다 알아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쓰기로 결심한 것은 단 한순간을 위해서다. 


1초 일지도, 그보다 짧을지도 모를 찰나의 기적. 


나는 얼굴도 모르고 나이도 성별도 상황도 다른 타인과 주파수가 맞는 바로 그 기적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실컷 아무도 나를 이해 못해!라고 울부짖어놓고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나는 분명히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스치듯 만났을 기적이라고 믿어본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이소라 - track9)


버스 유리 창에 기대어, 침대 이불 속에서, 정처 없이 걷다가 등등. 우리는 ‘노래’를 만나본 적 있기 때문이다.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 나를 지나쳐 간 수많은 노래 중 몇몇의 가사는 고막을 뚫고 가슴에 와서 박혔다. 나에게는 이소라의 노래가 자주 그랬다. 

가수 이소라 씨는 당연하게도 나를 모른다. 나 또한 방송에 간혹 비치는 이소라 씨의 모습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2008년에 발매한 ‘이소라 7집’ track 9이 내뱉는 ‘당연한 고독’ 속에서 그녀의 일면과 나의 일면이 찌릿-하고 하나로 통하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찰나였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와 나의 백만분의 일 조각이 온전히 동기화되는 것 같았다. 위로받았다. 엄마도 애인도 절친도 아닌 타인의 목소리에. 


이소라 씨가 노래를 부르며 쏘아 올린 감정은 위성이 되어 오랫동안 우주를 떠돌며 신호를 보내다가 내게 닿았을 것이다. 그 음악이 태어났을 때는 나를 만나게 될지 알 수조차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끝내 우리는 만났고 노래가 말하는 당연한 고독, 평범한 불행에 대해 마치 함께인 것처럼 가만가만 생각했다. 노래는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기도 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내가 차마 명명하지 못했던 감정을 그녀가 대신 입 밖으로 뱉어주고 있었다. 


심장 안쪽이 뜨뜻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생각했더랬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진심을 우주에 쏘아 올려서 짧은 순간 단 한 명의 가슴에라도 가서 닿을 수 있다면.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노래가 되고 싶은 기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머리 아프게 읽지 않아도 좋다. 내 인생은 어느 미지근한 오후의 노래처럼 슬렁슬렁 펼쳐졌다가 제멋대로 읽혔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단 한 명에게 단 1초만이라도 ‘내가 썼나?’ 싶은 누군가의 언어가 될 수 있다면, 그 순간을 위해 내 안의 활자를 쏟아내겠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의 우울 에피소드 치료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 들었던 생각, 마음을 울렸던 노랫말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되도록 가볍고 작은 움직임으로.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100% 이해할 수는 없다. 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내 몸처럼 이해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작은 기적에 감동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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