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 민물장어의 꿈
심리테스트는 재밌다. 인터넷 플래시 게임으로 소위 '심테'를 하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MBTI 대유행의 시대인 지금까지 나는 줄곧 심리테스트를 좋아해 왔다. 심리라는 것은 늘 나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10대 소녀일 적에는 잡지 속의 짧은 테스트를 해보며 나를 가늠해 보곤 했고, 남녀의 뇌과학과 심리를 다룬 베스트셀러도 꽤나 재밌게 읽었다. 나의 타입에 대한 예측과 함께 미래의 애인과 새롭게 만날 친구를 상상하며 이불속에서 키득거렸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심리학과에서 개설한 교양 수업들을 골라서 수강했다.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며, 그 기질들이 사회화를 거쳐 어느 것은 발달하고 다른 것은 퇴화하면서 성격이 만들어진다는 당시 교수님의 말씀을 아직도 나는 굳게 믿는다. 영유아기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애착에 대한 이론도 기억한다. 나는 회피애착인지 불안애착인지를 가늠하며 잠들었던 밤들이 있었다.
MBTI 테스트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내 MBTI를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엔 ENFP와 ENFJ를 왔다 갔다 했고, 회사 일을 하면서부터는 늘 INFJ와 ENFJ 사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 이처럼 나는 내 성격유형이 변화했는지 그대로인지를 트래킹 하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내가 MBTI에 매너리즘을 느낀다면 그것은 결코 지루해서가 아니고 사람의 심리가 너무도 중요하고 복잡다단하다고 믿어서 16가지 유형으로는 분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중률을 막론하고 이토록 내가 심리테스트에 진심인 이유는 ‘나’에 대해 뾰족한 답을 내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려웠다. 삶에 곡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내가.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것도 아니면서 사랑과 사람에 목말라하는 내가. 쓰러져가는 집안의 기둥도 아니면서 성취를 위해 악바리처럼 사는 내가. 그 모든 ‘나’들을 알고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만으로 나에 대해 단정적으로 알려주고 유형을 구분 지어주는 게 좋았다. ‘당신은 이런 타입이니 저런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이러저러하게 행동하세요.’ 얼마나 간단하고 좋은가. 실제로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심리테스트 결과지를 나에 대해 설명서처럼 써서 이마에 붙이고 다니고 싶었다.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남들이 알 리 없으니까.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나마 MBTI 돌풍이 불러온 심리테스트의 재유행은 엉킨 관계를 꽤나 많이 풀어주었다. 가까운 사람끼리 MBTI나 이에 기반한 각종 컬러 테스트, 연애유형 테스트, 동물 테스트 등을 공유하면, 서로가 서로를 대할 때의 프로토콜이 만들어졌다.
'아무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신해철 - 민물장어의 꿈)
상담 치료를 받아보기로 결심한 이유도 심리테스트를 하는 마음과 비슷했다. 내게 발생한,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내려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물론 두려움도 조금은 있었지만 다행히 당시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 중 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친구가 본인의 센터를 소개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심리테스트를 하는 거라고 스스로에게도 남들에게도 가벼운 척을 하며 센터에 방문할 수 있었다. 마치 나는 내담자가 아니고 친구가 이곳에 있어서 무관하게 들른 것처럼.
실제로 첫 내담 전에 나는 여러 가지 테스트가 프린트된 종이뭉치를 한가득 받았다. 이거지.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빠르게 집중하여 수백 개의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객관식 문항들, “나는 아버지를 ㅇㅇㅇ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ㅇㅇㅇ할 때가 싫다” (*예시 문항일 뿐입니다) 등의 빈칸 채우기식의 주관식 문항들을 빼곡히 작성했다. 모든 테스트 응답을 스캔해서 센터로 보내고 처음으로 대면 상담을 하는 날이 찾아왔다. 이제 정답을 들을 차례였다. 내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했을 테니 나에게 꼭 맞는 해결 방법을 알려주시겠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첫 상담에서 10분 정도 테스트 결과를 다루고 결과지를 별도로 내준 이후 그 검사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일은 없었다. 두 번째 상담, 세 번째 상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상담에 임했지만, 더 이상 상담을 주기적으로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너졌다. 상담은 실패였다.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랬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무슨 노래 제목에 민물장어가 있어, 하고 픽 웃어버렸는데 가사를 듣고 보니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새 나는 한 마리의 민물장어가 되어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건만, 본능적으로 태어난 곳을 떠나 뼈를 깎는 성장을 하며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헤엄을 멈추지 않는 생애. 나를 좀 알아보고 살아보겠다고 어쭙잖은 심리테스트를 하면서 발버둥 치는 내가 민물장어와 다른 것이, 민물장어와 우리가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한 헤엄의 과정을 지나야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일 테다. 나는 그 폭풍 같은 여정 한가운데에 있었다.
오랜만에 곱씹어본 노랫말 속에는 내가 상담을 성공적으로 이어나가지 못했던 이유들이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도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다. 상담 선생님 앞에서조차 괜찮은 사람인 척, 심각하지 않은 척, 우울증 환자가 아닌 척. 부끄럽지만 그랬다. 그러니까 ‘심리테스트’라는 재미 요소를 찾는 것뿐이라고 나 자신조차 속이려 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문제가 없고, 그저 나를 알고 싶은 것뿐이라고 거듭 나와 주변을 설득했다. 그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 진실하게 거울 앞에 서지 못했다. 결국 민물장어는 스스로를 ‘깎고 자르’ 기 까지 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했음에도, 하지 못했다.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거친 파도 아래 깊이’ 닿기 위해 한평생을 바치는 장어들, 아니 우리들을. 그것은 고작 심리테스트 10분, 상담 질문지 1시간, 심리 상담 90분씩 5회 만에 알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생명을 바쳐 알고자 해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속성으로 알아내려고 한 것이 반칙이었던 것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만 만 30년. 그 사이 겹겹이 쌓이고 곪아버린 것들을 어떻게 그 짧은 시간으로 ‘퉁’ 칠 수 있겠는가. 아마 나는 지금으로부터 30년이 더 지나도 내가 누군지 완벽히 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이 모든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