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를 만나다

꿈꾸는 남자, 일곱 번째 이야기

by 캣브로

꿈꾸는 남자 매거진에 올리는 글은 소설도 아니고 실화는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매일 꾸는 꿈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매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살을 붙여 초단편 소설처럼 써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요.


참 더럽게 좋은 날씨였다. 가본 적 없는 캘리포니아가 떠오르는 볕과 바람 속에서 난 끝도 없는 도랑길을 가고 또 갔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스쿠터 한 대로 말이다. 몽중에도 안전예민증은 어디 안 갔는지 머리에 꼭 맞는 헬멧도 착용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진짜처럼 느껴지는 꿈이었다. 스쿠터 뒤 칸, 박스가 있어야 할 곳에 개가 한 마리 타고 있었다는 점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포메라니안과 진돗개를 섞어 놓은 듯한 개가 나를 보고 웃었다. 더운 건지 좋은 건지 혀를 반쯤 내밀고는 그저 웃기만 했다. 풍성하고 하얀 털이 눈부셨다. 그와 대조되는 작고 까만 코는 사랑스러웠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지루한 도랑길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목적지도 없었다. 어디로 갈지도 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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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 한참을 갔다. 바람이 변했다. 바람은 그대로였으나 내 마음이 다르게 느꼈다. 뜨거운 햇살을 적당히 식혀 주던 시원한 바람이 어쩐지 스산했다. 길 한쪽으로 나 있던 도랑은 어느새 바닥이 보이지 않는 호수처럼 깊어졌다. 그리고 이내 호수가 되었다. 구불구불하긴 해도 비교적 곧게 뻗어 있던 길이 수상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코너를 돌기 위해 스쿠터의 속도를 줄였다. 브레이크. 다시 액셀. 좌우를 살피고 다시 엑셀. 쿵.


늑대? 늑대다.


숲 쪽에서 늑대가 한 마리 펄쩍 뛰어오르더니 앞을 막았다. 내 머리통보다 큰 아가리에서 침을 흘리며 녀석은 나와 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집채만 하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살려면 뛰어야 한다. 그다음으로 든 생각이다.


쓰고 있던 헬멧을 늑대에게 집어던지고서는 호수로 뛰어들었다. 호수에 뛰어들어서야 내 뒤를 따르던 하얀 개가 생각났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늑대는 하울링을 하며 나를 쫓았다. 그래도 이렇게 깊은 물까지 쫓아오지는 않겠지.


쫓아왔다. 땅을 박차고 크게 도약을 한 걸까. 어느새 시커먼 그림자가 내 뒤까지 바짝 붙었다. 살아야 한다. 고개를 돌렸다. 나와 같이 살기 위해 열심히 헤엄을 치고 있는 작고 하얀 녀석이 보였다. 살아야 한다. 이름 모를 이 녀석을 그 큰 아가리로 밀어 넣었다. 아니, 들어서 던졌다. 살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난 살 수 있었다.


깨갱. 작은 소리가 났다. 자신을 던지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이 녀석은 마지막까지도 원망의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제길 꿈 한번 더럽네. 내 평생 이렇게 기분 나쁜 꿈은 없었다. 하루를 죽은 것처럼 보냈다. 그래야 그날을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참 더럽게 기분 나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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