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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Aug 26. 2021

변태왕 루비 - 너, 정체가 뭐냐

변태 고양이


4냥꾼 캣브로, 서른네 번째 이야기




난 샤워할 때도 음악을 재생해 놓을 만큼 노래 듣는 걸 좋아한다. 일어나자마자 시끄럽게 노래를 듣다 보니 종종 아내에게 혼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난 이렇게 항변한다. “Music is my life.” 그러면 아내는 다시 말한다. “까불지 말고 소리 줄여.” “네.” 난 노래를 듣는 것만큼이나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정말이지 내 보잘것없는 일상에서 음주와 가무마저 빼앗아 간 코로나가 원망스럽다.


우리 루비도 집사를 닮아 가는지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른다. 어쩌면 마끼가 세상을 떠나고 누나의 몫까지 다하려는 것인지도. 이유야 어떻든 작은 이빨을 보이며 ‘애~옹’ 하고 노래하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 그런데 말이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아무래도 내가 교육을 잘못 시킨 것 같다. 적어도 때와 장소는 가리는 나와 달리 루비의 노래방 영업 시간은 연중무휴이다.


래퍼 머쉬베놈의 노래가 딱 어울린다.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엄마에게 딱 붙어 형아를 노려보는 노래냥이 루비


루비의 영업 전략은 단순하다.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루비가 얻는 대가는 확실하다. 집사의 관심이다. 가끔은 루비가 괘씸하다. 결국은 귀여워서 봐주긴 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자고 있는 내 머리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노래를 부른다. 그만 자고 자기를 좀 만져 달라는 뜻이다. 얼굴과 엉덩이를 신나게 만져 주다 보면 어느새 내 눈은 말똥말똥해진다. 제기랄, 그날 잠은 다 잔 거다.


정말 피곤한 날에는 손만 내준다. 그러면 루비는 축축한 코를 들이대거나 이빨로 앙 하고 물며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다 자기도 지치면 그제야 옆에서 자기 시작하는데, 괘씸한 녀석이 꼭 내 손을 자기 배로 깔고 잔다! 온기에 덥혀진 손이 축축해져도 손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인 게, 손을 빼면 다시 앞의 과정을 반복한다. 악덕 직장 상사도 이렇게는 괴롭히지 않는다. 빌어먹을, 예사 고양이가 아니다.


"날 피해 갈 수 있을 것 같아?"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현관을 열면 벌써 이 녀석은 노래를 준비 중이다. 어쨌든 반가움의 의미이니 기분은 좋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 시끄러울 뿐이다.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한 번씩 만져 주는데도 노래를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 사료도 충분하고, 화장실도 깨끗하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뭘까? 며칠 전 우연히 루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닥에 엎드려 눈높이를 자기와 맞추고 만족할 때까지 눈을 맞추고 있어야 된다. 젠장, 너 고양이 아니지?


"형아, 빨리 와서 누워!" 이 과정을 생략하고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고 있으면 격하게 나를 방해한다. 엉덩이를 내 얼굴로 향하고 말이다. "그런데 츠동아, 너는 왜 왔니?"


루비의 변태 행각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실버태비 고양이 가루비」 편에서 이미 얘기했기에 결론부터 말하겠다. 루비는 내가 잠든 틈을 타 몰래 나의 소중한 겨드랑이를 그루밍한다. 잠을 못 자게 노래 부르는 것은 애교이지만, 집사의 예민한 겨드랑이를 허락도 없이 그루밍하는 것은 범죄이다. 어쩐지 루비가 집에 오고 나서 밤잠을 설치더라니. 제 X꼬나 열심히 그루밍할 것이지, 깨끗하게 샤워까지 마친 죄 없는 겨드랑이에 괜히 침 냄새만 묻히고 염병할... 변태도 이런 변태가 없다.


이 변태 고양이 덕분에 더운 여름에도 팔을 이불 속으로 넣고 자는 일이 다반사다. 혹시라도 겨드랑이를 내어 주지 않으면 축축한 코를 내 코에 갖다 대고 킁킁거리기 시작한다. 살짝 눈을 뜨고 바라보면 주먹만 한 고양이 얼굴이 보인다. 내가 눈을 뜬 걸 확인하면 루비는 앞발로 겨드랑이가 접히는 부분을 툭툭 치기 시작한다. 빨리 열어 보라는 뜻이다. 팔을 열어 주면 내 옆구리 사이로 파고들어 와서 발라당 눕는다.


소문난 맛집 캣브로의 겨드랑이. 그리고 오늘도 문을 두드리는 단골 변태. “형아, 오늘 겨드랑이가 좀 짜다. 운동했어?”


마음이 풀린다. 이 뻔뻔한 녀석이 심히 괘씸하면서도 하는 짓이 귀엽다. 하늘하늘 보드라운 털이 얼굴을 간질이는 느낌도 썩 나쁘지 않다. 이 변태 녀석도 마끼의 몫까지 나를 괴롭히느라 고생이 많겠구나 생각이 든다. 베개 대신 루비를 꼭 안고 골골이 소리를 듣고 있으면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갑자기?


한 쪽이 넘는 분량으로 루비를 변태로 몰아세우고 흉만 보다가 이렇게 아름답게 글을 맺는다고? 이런... 나란 녀석도 참... 그러나 전편에서 밝혔듯이 나는 변태스러움을 긍정했다. 말하자면 루비를 욕한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찬양하고 있던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란 말이다! 이런, 이렇게 옹색할 수가.


변태란 단어는 예술적인, 정확히는 희극적인 어떤 것을 연상시킨다. 비슷한 의미인 ‘비정상’이란 단어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힘이다. 변태스러움은 일종의 혁신이고, 주류에 대항하는 비주류의 반란이다. 명확한 자기의식을 가진 존재의 일탈이자 정(正)을 넘어 반(反)의 단계에서 합(合)을 향해 나아가는 변증법적 과정이랄까. "귀여운 변태 고양이 루비야. 그렇기에 너는 위대한 녀석이다."


“엄마, 형아가 나 보고 변태왕이래요! 이거 좋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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