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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Aug 20. 2021

변태왕 루비 - 누가 보면 밥을 안 주는 줄

변태 고양이

4냥꾼 캣브로, 서른세 번째 이야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변태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엽기적 기행부터 귀엽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습관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정상이 아닌 상태를 이르는 이 말은 때로 일상에서 긍정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기상천외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득한 경지에 이른 고수만 획득할 수 있는 변태의 칭호. 한없이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묵직한(?) 변태의 존재감. 변태는 아무나 될 수 없다.


그리고 여기, 한 변태 고양이가 있다. 이름은 루비. 사는 곳은 우리 집. 주특기는 괴식과 노래 부르기. 비극 같은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희극 속 주인공처럼 즐겁고 유쾌하게 보내고 있는 고양이다. 비극은 다름 아닌 집사들의 몫이다. 괜찮다. 멀리서 보면 비극도 희극처럼 보이는 법이니까. 들으면 재밌지만 직접 겪으면 웃을 수 없는 루비의 변태스러움. 시작한다.


엄마와 형아를 괴롭힐 궁리 중인 루비. 변태 눈빛 연기가 일품이다.


루비의 변태스러움은 「실버태비 고양이 가루비」 편과 「나는 괴식 고양이」 편에서도 잠깐 소개한 적 있다. 따지고 보면 기물 파손범 츠동이나 습관성 가출냥 마끼와 비교하면 루비의 변태 행각은 경범죄(?)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집은 아파트지만 1층이라 벌레가 적지 않은 편이다. 베란다 앞뒤로 울창한 풀과 나무가 있어, 과장을 조금 보태 여름에는 파브르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들어온 벌레는 많은데 시체가 없다.


왜일까... 도대체 왜일까. 시체가 없는 게 더 찝찝하다. 얼마 전 구입한 포충기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통을 살펴보니 들어온 만큼의 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답은 간단했다. 공급과 수요의 완벽한 균형. 보이지 않는 손. 루비의 경제학. 이렇게 표현하면 조금 고상할까. 벌레를 보면 잡아서 갖고 노는 형, 누나들과 다르게 루비는 바로 먹는다. 주택가에 독충이 있을 리는 없으니 단백질도 섭취하고 몸에 나쁘지는 않겠다만... 그 광경을 보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루비는 사료도 그냥 먹지 않는다. 일단 편식하지 않고 어떤 사료도 잘 먹는 건 집사 입장에서 참 고맙다만, 정도가 지나치다. 형제 냥이들이 토해 놓은 사료도 먹는다. 보통 사료와 헤어볼을 같이 토하는 츠동이나 구로와 달리, 마끼는 과식으로 온전히 사료만 토하는 경우가 많은데 루비에게는 진수성찬인 셈이다. 토해 놓은 사료를 치우기 위해 휴지를 들고 왔을 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료가 온데간데없는 것을 보았을 때의 심정이란... 고마움과 짠함, 경악스러움이라는 전혀 이질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앗! 저것은!” 간식의 주 제공자였던 마끼가 세상을 떠나 버린 탓에 벌레에 맛을 들인 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루비는 물도 그냥 마시지 않는다.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있어도 화장실이나 싱크대에서 물을 마신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고인 물을 마시다가 여러 번 걸렸다. 길냥이 시절을 회상하며 현재의 행복을 음미하려는 루비만의 의식인 걸까. 어디선가 홀짝이는 소리가 동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면 백이면 백 루비가 화장실에서 변태 짓을 하고 있다. 건강에 좋을 리 없어 커버를 닫아 놓아도 봤지만...


이제는 샤워하고 바닥에 고인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바닥에 거품이 남지 않도록 샤워기로 항상 깨끗이 치우긴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축축해진 발로 집 안 곳곳 발자국을 다 찍고 다닌다. 스팀 청소기까지 돌린 날, 앙증맞게 찍혀 있는 루비의 발자국들을 보면 울고 싶어진다. 우리들이 샤워 후에는 습기 제거를 위해 문을 항상 열어 둔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된 것 같다.


요새는 싱크대에 꽂혀서 설거지를 위해 그릇에 받아 놓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도대체 얘는 왜 이러는 걸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시위를 하는 걸까. 누가 이기나 보자. 내친김에 싱크대에 루비 전용 물그릇을 마련해 주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세제가 들어갈까 봐 자주 갈아 준다. 여간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 아니다.


싱크대에서 음수 중인 루비. 요새는 츠동이도 루비를 따라 싱크대에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길거리 출신이 다 그렇지 뭐. 귀여운 녀석... 누가 보면 밥도 제대로 안 주는 줄 알겠다. 여기에서라도 해명할 수 있어 속 시원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아니, 우리 집 고양이는 변태 고양이!’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고생하는 집사를 위해 루비는 나름 청소부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물을 잘 마시지 않아 마음고생을 겪는 것보다는 낫다고. 더 기괴하고, 더 귀여운 사건들이 남아 있다. 루비의 변태 행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형아도 먹고살자, 루비야. 다 좋은데 형아가 마시는 물은 제발 탐하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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