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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Mar 14. 2021

고양이 밥그릇 - 생존의 욕구

고양이 식탁

4냥꾼 캣브로, 일곱 번째 이야기




느닷없이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이라니


문득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에 따라 고양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용품들을 나눠 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말하지만, 오늘도 고양이 얘기를 하려는 것이 맞다. 나는 심리학 전공자도 아닐뿐더러 심리 이론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내 전공은 철학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내 성격에 냥이들 이름을 플라톤, 소크라테스로 짓지 않았을까. 어쩌면 개를 키웠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이 샜다.


집사의 전공 서적을 읽고 있는 츠동이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은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로부터 시작되어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아간다는 심리학 이론 중 하나이다. 고양이 발달 단계를 설명하는 훌륭한 모델들은 이미 많이 있고, 욕구 위계 이론을 고양이에 적용하는 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부터 말하려는 내용은 절대 학술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럴 깜냥도 되지 못한다. 1단계 생존을 위한 욕구에서 다룰 고양이 용품은 사료와 물 그릇이다.


고양이도 먹고살아야지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다. 일단 살아 있어야 사랑도 하고 우주와 존재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고양이도 고민이란 걸 할까. 우리 냥이들은 확실히 아니다. 어떻게 해야 사료 대신 간식을 먹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하는 것 같기는 하다. 길냥이 시절과 달리 깨끗한 그릇에 담긴 사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고민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사료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밥을 거르는 고양이는 없는 것 같다. 다만 건강을 위해 그릇의 재질을 고려해 볼 수는 있다. 친환경 소재라 하더라도 플라스틱 그릇은 피하는 편이다. 유리, 사기, 스테인리스 등 다양한 재질의 그릇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큰 차이는 못 느끼겠다. 지금은 사기그릇을 쓰고 있고, 간식은 투명한 유리그릇에 주고 있다. 스테인리스의 경우 깨질 위험이 없고 가볍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저가 제품의 경우 녹이 스는 경우도 있어 유의해야 한다. 그릇 자체보다는 그릇에 무엇을 담아 주는지가 사실 더 중요하다.


요새는 스마트폰 어플과 연동되는 자동 급식기도 나온다. 써 본 적은 없다. 시간이 되면 통에 담긴 사료가 일정 분량 떨어진다고 한다. 발로 누르면 사료가 한 알씩 나오는 장난감도 있다는데 글쎄... 먹을 것으로는 장난치지 말라는 말은 우리 똥냥이들에게도 해당된다. 기회가 오면 구입해 보고 싶다. 아무튼 고양이들은 보통 자신이 먹을 분량을 잘 조절하는 쪽이다. 아내보다는 잘 조절하는 것 같다. 자동 급식기는 식탐을 잘 조절하지 못하거나 다이어트가 필요한 냥이들이 있는 집에서 주로 사용한다. 혹시 아내에게도 필요한지 물어보지는... 못할 것 같다. 자동 급식기는 집사가 외출을 오래 하는 경우가 많은 집에서도 유용하다.


우유에 말아 먹으면 굉장히 맛있을 것 같다. 시도해 본 적은 없다.


물만 잘 마셔도 효자다


고양이는 요로계 질환 예방을 위해 식수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수컷의 경우라면 특히 그렇고, 습식이 아닌 건식 사료를 먹는 집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을 잘 마시는 고양이가 효자라는 얘기도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료와 달리 물을 주는 문제는 조금 복잡하다. 그릇의 크기나 깊이 등 취향을 타기도 하고, 자동 급수기 물을 더 좋아하는 고양이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주는지에 따라 음수량이 크게 달라지므로 냥이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다묘 가정의 경우, 개별 고양이들의 취향이 달라 급수 문제로 꽤 골치를 앓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똥냥이 네 마리는 물을 잘 마신다. 물은 오히려 내가 좀 안 마시는 편이다.


물을 마시는 루비. 덩치가 작아서인지 낮은 높이의 물 그릇을 더 좋아한다. 피부병 때문에 시원하게 털을 밀었을 때이다.

 

문제는 고양이들이 급수기 물을 선호하는데, 선호하는 제품이 각기 다를 경우이다. 급수기의 형태와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가격도 꽤 나가는 편이다. 커다란 볼이 계속 구르며 물을 순환시키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아래쪽의 물을 끌어 올려 위에서 분수처럼 물을 흘려 보내거나 정수기처럼 물이 나오는 방식도 있다. 정말 다양하다. 힘들겠지만 맞춰 주는 수밖에 없다. 고양이가 물을 잘 마시는 건 백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집도 고양이 정수기를 사용해 본 적은 있다. 비싸게 주고 샀는데 A 제품을 사용하면 츠동이가 안 마시고, B 제품을 놓았더니 마끼가 안 마셨다. C 제품과 D 제품은 다른 녀석이 잘 안 마시는 식이었다. 두 종류를 함께 사용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릇으로 주었을 때보다 음수량이 크게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전기 제품을 내내 켜 놓는 것도 마음에 걸려 결국 모두 팔아 버리고 말았다. 그릇에 비해 위생 관리가 오히려 더 힘든 점도 있어 차라리 물을 자주 갈아주는 게 우리 사정에 맞았다.


5성급 호텔도 아닌데 밥 주는 그릇이 뭐라고, 쓰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졌다. 떠올려 보면 초보 집사 시절에는 고양이들 먹는 문제 하나만으로도 쉽지 않았구나 싶다. 깐깐한 녀석들이라고 여기다가도 점심시간 10분 전부터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 지금 반성하는 중이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잘 먹고 잘살아라. 세상 모든 고양이들아. 차면 비워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이다. 다음은 고양이들의 ‘싸는’ 얘기이다.     


사료는 필요 없고, 츄르만 줬으면 좋겠다, 집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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