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가 들린다. 비몽사몽 눈을 떠 보면, 마끼는 내 발 사이 또는 다리 옆에서, 루비는 내 얼굴 오른편에서 귀엽게 자고 있다.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두 냥이는 집사도 곧 일어난다는 걸 귀신같이 안다. 크게 하품을 하고는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집사가 일을 하지 않으면, 자기들도 굶어야 한다는 걸 아는 것일까. 지각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아침은 아니고 주말 낮잠을 자는 모습이다. 마끼와 루비가 벌써 자리를 잡았다. 스쿼트로 단련한 엉덩이골이 매력적이다.
보통은 알람을 세 개 맞춰 두고, 그다음 알람이나 마지막 알람에 일어나는 편이다. 피곤한데도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알람에 맞춰 일어날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백이면 백 사료 그릇이 비어 있을 때이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를 뚫고 마끼와 루비의 불길한 골골이 소리가 들린다. 마끼는 배에 꾹꾹이를 하고, 루비는 축축한 코를 얼굴에 대고 어서 일어나라고 계속 킁킁댄다. 자동 알람이 따로 없다. 휴일에는 무시하고 자 보려고 한 적도 있다. 불가능하다. 마끼가 배를 꾹꾹이하는 바람에 소변이 마려워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상당히 지능적이다. 심지어 이 괘씸한 녀석들은 절대 아내는 깨우지 않는다. 서열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딛는 순간, 둘은 사료 그릇이 비어 있는 게 보이지 않냐며 동시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발에 차일 정도로 들러붙어, 꼬리를 밟은 적도 다반사다. 그래서 화장실이 너무 급하지 않은 이상 사료부터 채워 주는 편이다. 혹시라도 화장실을 먼저 가면, 둘 다 따라와서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시선이 꽤 불편하다. 나도 복수를 위해 가끔 두 녀석이 화장실을 쓰고 있을 때, 문을 열고 용변하는 모습을 쳐다본 적이 있다. 그러나 통쾌함은 없고 자괴감만 남아 다시 문을 닫았다.
마끼와 루비의 매서운 눈빛. "내가 분명히 사료가 비어 있지 않게 해 두라고 말했을 텐데."
옷장은 고양이들의 놀이터
출근을 위해 씻고 나면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우리 집은 화장대가 따로 없다. 화장품도 붙박이장 안에 둔다. 고양이에게는 장 속이 놀이공원처럼 느껴지나 보다. 호시탐탐 들어갈 기회만 노리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느새 장으로 들어가 있다. 드라이어로 바람도 날려 보고 물도 뿌려 보지만 불굴의 의지로 들어간다. 빼내기를 포기하고 출근을 준비하다 깜빡해서 갇힌 적도 많다. 종일 갇혀 있을까 봐 옷장 문을 닫기 전 항상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갇힌 탓에 아내가 몇 번 구해 준 적이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옷이 있는 칸은 마끼 전담 구역이다. 화장품 쪽은 그나마 나은데 옷 쪽은 더 난처하다. 들어가고 나면 옷에 온통 털이 들러붙기 때문이다. 삼색 카오스인 마끼의 털은 어떤 색의 옷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나마 붙은 털은 떼어내면 그만이지만, 실랑이를 벌이다 발톱에 걸려 옷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내 마음도 찢어진다. 그래서 우리 집은 붙박이장 칸마다 고양이 퇴치용 소형 물뿌리개를 두고 있다. (물론 안에는 물만 들어 있다.)
정말 공교롭게도 글을 쓰는 오늘, 실수로 루비가1시간 정도 옷장에 갇혀 있었다. 루비는 옷장에 들어가면 혼나는 걸 알고 소리도 없이 항상 몰래 들어간다. 몇번을 확인하는데도 결국 사달이 났다. 다행히 잠시 외출했다 들어온 아내가 루비의 애처로운 목소리를 듣고 꺼내줄 수 있었다. 학습 능력이 없는 걸까, 도전 정신이 충만한 걸까. 퇴근하고 옷을 정리하기 위해 옷장 문을 열자, 루비는 또 기회를 엿보다 나에게 저지당했다.
어디선가 계속 울음소리는 들리는데 보이지 않는다면, 붙박이장을 열어 보면 된다. 옷에는 이미 털이 가득 묻었다.
이제 좀 쉴 수 있을까
아침에 사료 그릇을 채워 준 보람이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면, 그래도 마끼와 루비만 반갑게 마중을 나온다. 둘은 바지에 몸을 비비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빈 사료 그릇이 보인다. 아... 그런 거였나... 겁쟁이 구로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겠고, 츠동이는 관심이 없다. 옷을 갈아입고 사료를 채워 준다. 사료통을 꺼내자 마자, 마끼와 루비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둘이 허겁지겁 다 먹고 나서야, 츠동이가 점잖은 걸음으로 거실을 한번 둘러보고는 천천히 저녁 식사를 한다.
마중나온 루비. 순수한 반가움의 눈빛은 아니고, 사료에 대한 기대감이 20% 정도 섞여 있을 때 나오는 눈빛이다.
냥이들이 밥을 다 먹고 나면, 노래를 틀고 청소기를 돌린다. 바닥이 온통 털 천지다. 화장실도 치워 줘야 한다. 가끔 화장실을 치우는 도중에,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변을 보는 배은망덕한 놈들이 있다. 사랑스러운 동생들이지만, 아직 모래에 굳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변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냥이들의 배려를 바라는 건 무리일까.
집안일을 전부 끝내고 밤이 오면, 집사와 냥이 모두에게 평화가 찾아온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으면, 냥이들이 차례대로 찾아와 잠시 머무르다 간다. 기분 좋은 골골이 소리를 듣고 있으면 사룟값도 아깝지 않고 화장실은 백 번도 더 치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 때가 되자 마끼와 루비가 침대 위로 올라온다. 내일도 한바탕 전쟁을 치르게 되겠지만, 오늘 하루도 나쁘지 않았다.
지친 집사를 위해 마끼가 꾹꾹이 안마를 해 주지만, 위치가 영 좋지 않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