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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Mar 06. 2021

실버태비 고양이 가루비

회색냥이 입양 이야기

4냥꾼 캣브로, 다섯 번째 이야기




맛 좋은 가루비


가루비는 4살(추정) 실버태비 수컷 고양이다. 털과 얼굴 형태를 보면 믹스묘 같지만 길냥이 출신이라 어떤 종이 섞였는지는 가늠이 안 된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집에 왔을 때가 1.5~2살 정도였다. 루비는 막내이면서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고양이이기도 하다. 암컷인 마끼보다도 조금 작다. 수컷 치고도 몸집이 작은 편이지만, 항상 다른 형제들과 비교되다 보니 더 작아 보인다. 그래도 볼살만은 형제들 중 제일 토실토실하다. 엎드리면 볼살이 눌려 눈을 가릴 정도이니 돼냥이인 구로도 귀여움에서 밀릴 때가 있다.


토실토실한 볼살 덕분에 만지는 맛이 일품이다. 털이 아니라 정말로 볼살이 두툼하게 잡힌다. 유달리 고양이 특유의 ‘ㅅ’자 입도 돋보이는 냥이다.


까맣게 얼룩덜룩한 태비 무늬가 불판에서 잘 익고 있는 갈빗대처럼 보여 갈비의 일본식 발음인 가루비라고 이름을 지었다. 솔직히 시인하겠다. 이름을 지을 당시, 내가 아는 세 글자 일식 이름이 모두 동이 났다. 갈비보다는 연탄 공장에서 까불면서 놀다가 들어온 모양새에 더 가깝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JLPT 자격증을 N3 등급이 아니라 N2 등급으로 땄다면 혹시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까. 그러나 마끼만큼이나 애교 많고 작은 몸집 덕분에 공교롭게 루비라는 여성스러운 이름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셈이 되었다.


암컷인 마끼보다 덩치가 작다. 누나의 몸에 발을 올리고 아주 건방진 눈빛을 하고 있다.


헌팅의 귀재


일반적으로 집사가 고양이를 입양하는 과정과 달리, 고양이가 집사를 선택하고 자연스럽게 집에 눌러앉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를 간택이라고 부른다. 루비는 입양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헌팅당했다. 성은이 망극하게도 루비가 우리를 간택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일이자 많은 집사들이 꿈꾸던 그 순간이 온 것이다.


사건은 이렇다. 아내는 내 20년 지기 친구의 집을 사무실 삼아 같이 일하고 있다. 늘 그렇듯 친구는 일은 뒷전으로 두고 담배를 한 대 피우러 나갔다. 담배를 피우는 도중, 사람을 피하지 않는 한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친구는 아내를 호출해 간식을 갖고 나오도록 했다. 하지만 루비는 간식도 마다하고 졸졸 따라오기만 했다. 어디까지 따라오나 두고 보았더니 어느새 현관까지 이르렀다. 현관 앞에서 잠깐의 탐색전을 펼친 후, 쫓아낼 겨를도 없이 루비는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임시 보호를 위해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자기 발로 들어와 사무실을 무단 점거 중인 루비


당연히 내가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항상 그랬다. 일단 집에 들인 고양이는 키우고 보는 법. 그러나 아내는 이번에도 루비를 키우는 것을 완강히 반대했다. 이제 남은 건 루비의 몫이었다.


루비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마끼 때와 비슷했다. 마끼가 영리하게 영업 수완을 발휘하여 아내를 설득한 느낌이라면, 루비는 타고난 헌터 본능으로 아내를 매혹시켰다. 역시 헌터, 도대체 루비는 어디까지 보고 있던 것이었을까. 형들이 무섭게 하악질을 해도 먼저 다가서고(마끼만 유일하게 친절했다.), 아내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골골이를 했다. 루비는 이렇게 넷째 동생이 되었다.


두 개냥이의 첫 만남. 오랫동안 함께한 것처럼 전혀 어색함이 없다.


변태냥 루비


단점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일반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루비의 변태스러움을 몇 가지 소개하고 싶다. 루비는 안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 만져 주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며 칭얼댄다. 어쩌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선임 노래냥이였던 마끼와 세대교체를 하기로 합의를 본 것인지, 루비는 정말 쉴새 없이 노래를 부른다. 담배를 안 피워서 그런지 성량도 넷 중 제일 우렁차고, 음도 길게 뽑아낸다. ‘루비야~’라고 부르면 노래를 부르며 달려온다. 여기까지는 사랑스럽다.


루비가 오고 나서 이상하게 잠을 뒤척이게 되었다. 처음엔 업무 스트레스이겠거니 여겼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는 보통 여름에는 상의를 탈의하고 잔다. 하루는 자고 있는 도중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떴다. 어둠속에서 루비가 내 겨드랑이를 그루밍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금은 더 말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잠을 설치게 된 이유를 찾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 이후로는 상의를 탈의하거나 민소매를 입고 자는 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웬만하면 이불 속에 두 팔을 넣고 자려고 한다. 겨드랑이를 내주지 않자, 이제 루비는 자고 있는 집사의 머리를 그루밍한다. 어느 순간 M자 탈모가 깊어졌던 적이 있다. 생각하건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가 맞다.


"이불은 내가 따뜻하게 해 놓았으니, 형은 팔만 내어 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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