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캠프, 그리고 필리핀 수녀 학교

꿈꾸는 남자, 세 번째 이야기

by 캣브로

꿈꾸는 남자 매거진에 올리는 글은 소설도 아니고 실화는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매일 꾸는 꿈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매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살을 붙여 초단편 소설처럼 써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요.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리고 전교생과 함께 수련 캠프를 왔다. 초중고 및 대학교 친구들, 심지어 군대 선후임들까지 모두 친구들로 나왔다. 그러나 이번 꿈의 메인 스토리가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4~5일 동안 진행되는 꿈속 캠프에서 매일 밤 잠에 들며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는데 이게 진짜다. 그것은 필리핀의 어느 수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에 관한 일이다.


이 꿈에서조차 나는 현실의 나처럼 열심히 기억나는 꿈의 내용들을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꿈속의 꿈에서 꾼 꿈을 꿈속의 내가 꿈으로 적었고, 이를 다시 현실의 내가 전하는 셈이다. 뭐, 이런 구성이 중요하지는 않다. 그보다 여행 한 번 가 본 적도 없는 필리핀이라니. 그리고 하필이면 수녀 학교라니. 미리 얘기하자면, 자기 직전 아내와 함께 본 필리핀 공포 영화와 스페인 공포 영화가 내 무의식 속에 있던 것이 분명하다. 다만 다행히도 이번 꿈이 호러 장르는 아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길.


DAY 1

필리핀의 한 수녀 학교. 늦은 저녁, 수수하게 검은 바지에 흰색 셔츠만 입은 여학생들이 수녀들과 함께 기도문을 외우고 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보인다. 주인공인 것 같다. 그런데 그녀의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며 키득대는 무리가 보인다. 아마 그녀는 괴롭힘을 당하는 모양이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눈치는 아니지만 그녀는 조용히 기도문만 외울 뿐이다.


DAY 2

주인공은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게 맞는 것 같다. 결국 심한 괴롭힘 끝에 다른 수녀들이 이를 원장 수녀에게 보고했다. 다음날, 원장은 학생들을 강당에 모았다. 그리고 한 가지 이상한 지침을 내렸다.


"우리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군요. 일주일 동안 모든 학생들은 지금 나누어 주는 가면을 착용하고 생활하세요. 어느 경우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자거나 식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어길 시, 퇴교 조치합니다."


fantasy-2506830_1280.jpg 이런 느낌의 가면이었다.


잘 때는 몰라도 식사할 때 가면을 착용하고 있는 게 가능하려나?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다. 꿈속의 나조차도 이때까지는 원장의 속내를 알 길이 없었다. 어딘가 의뭉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DAY 3

가면을 쓰고 서로 신원 확인과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 상황에서조차 가해 학생들은 주인공을 찾아내었다. 원장과 다른 수녀들의 눈을 피해 괴롭힘이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를 알리지도 내색하지도 않았다. 가면 생활을 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교내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알립니다. 학생과 교사 전원은 지금 강당으로 모이기 바랍니다. 원장님 지시입니다."


교내의 모든 인원이 모였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시간이 한참 지나도 원장은 보이지 않았고 학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원장 수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한 수녀가 천천히 강단에 올라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원장 수녀님, 나와 주세요. 모두들 가면도 벗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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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강단에 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학생 무리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만이 천천히 가해 학생들을 향해 뒤를 돌 뿐이었다. 모두가 주인공의 얼굴을 확인했다. 모든 학생들의 입에서 나지막이 소리가 나왔다. 가면을 벗은 교복 차림의 주인공에게서 원장의 얼굴이 보였다. 원장은 그렇게 일주일 동안을 학생인 척하면서 생활했던 것이다.


가해 학생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쩐지 괴롭히는 내내 한마디 말도 없더라니. 원장은 무서운 표정으로 육성으로 호통쳤다. 마이크 없이도 강당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학생들은 마치 신의 음성을 듣는 것만 같았다.


"이 괘씸하고 악마 같은 것들. 매일매일 한 친구를 이렇게 괴롭혀 왔단 말이죠? 그러면서 신의 사랑을 전하는 수녀가 되겠다고? 친구를 괴롭힌 학생들은 오늘부로 모두 퇴학입니다! 당장 여기서 나가세요!"


가해 학생들은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녀의 꿈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과 자신들의 죄가 낱낱이 드러난 수치심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용서해 달라며 울고불고하는 녀석도,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허공만 응시하는 녀석도 있었다. 이렇게 꿈속의 꿈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현실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비교적 결말이 완전한 꿈이었다.


원장 수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한편 가해 학생들을 찾아내고 벌주는 원장 수녀의 방식은 어딘가 불교적이기도 하다. 아무리 진부해도 나는 권선징악이 좋다. 그나저나 이번 연휴도 벌써 마지막이다. 꿈 이야기를 옮겨 적을 시간이나 나올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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