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아파트 그리고 테러 교실

꿈꾸는 남자, 다섯 번째 이야기

by 캣브로

꿈꾸는 남자 매거진에 올리는 글은 소설도 아니고 실화는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매일 꾸는 꿈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매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살을 붙여 초단편 소설처럼 써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요.


그곳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였다. 수백 채가 모여 하나의 단지를 조성했기에 거대했고, 가장 좁은 집도 200평 정도나 되었기에 거대했다. 그곳은 하나의 마을처럼 기능하고 있었다. 입주민은 혼자 쓰기엔 과할 만큼 넓은 공간도 제공받고 아파트를 벗어나지 않고도 모든 생활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사는 데 돈이 거의 들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이곳은 아파트라기보다는 차라리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동체에 가까웠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행복했다. 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 한 편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지. 이래야 얘기가 좀 되지. 다 좋은데 이 아파트에는 이상한 규칙이 하나 있었다. 반드시 자기 공간의 일부를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하나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말하자면 서로가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셈인데 이 규칙을 따를 수 없다면 아파트에서 나가야 했다.


주민들은 각자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다른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영화관부터 피트니스센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화생활이 가능했다. 말 그대로 없는 것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원한다면 어떤 것을 제공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제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곳에서도 나는 그저 놀고먹는 것만 밝히는 지독한 한량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옆집으로 이사 왔다. 그는 자신을 테러리스트라 소개했다. 사람 좋게 생긴 것이 참 농담도 잘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이 오기까지는.


날이 밝았다. 아파트의 규칙에 따라 이 청년 역시 자신만의 무언가를 제공해야 했다. 아직 이삿짐도 채 정리되지 않은 그의 서비스 공간이 드러났다. 궁금했다. 이 사람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까? 찜질방이나 클라이밍 센터였으면 좋겠는데. 나는 인사도 나눌 겸 그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현수막에서 빨간색 펜으로 대충 휘갈겨 쓴 문구를 확인했다.


「○○○의 테러 교실」



아니, 잠깐만.


이게 무슨 소리일까. 진짜로 테러리스트였어? 그런데 테러면 테러지 교실은 또 뭐야. 이론과 실습, 모두 놓치지 않는 아주 훌륭한 테러리스트 교관이라도 된다는 것일까? 나는 호기심과 경계심을 반반씩 품고 그에게 이끌리듯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저기요. 여기 뭐 하는 데예요? 아니, 그보다 뭐 하시는 분이에요?”


청년, 아니 테러리스트는 갑자기 묻지도 않은 자기 사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가요. 사실은 처음엔 이 아파트 돌아가는 시스템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 폭파시키려고 입주한 거였어요. 도대체 왜 의무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대요? 그런데요. 한편으로 여기라면 제약 없이 테러리스트 꿈나무들을 양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만약 여기를 폭파하면 제 꿈은 이루겠지만, 훌륭한 테러리스트는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될 거예요.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참 이상한 딜레마죠?”


그는 내 옆집에 살았기에 난 굳이 찾지 않아도 그의 공간을 항상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그의 테러 교실은 파리만 날렸고 이따금 학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웃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나도 걱정이었다. 그가 실망하고 우리 아파트 곳곳에 폭탄을 설치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리만 날리던 테러 교실에 어린 학생들이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았다. 후진 양성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한 그의 열정에 테러의 신이 응답하기라도 한 것일까. 테러 교실은 이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성인반이 따로 개설될 정도로 우리 동에서는 제일 유명한 곳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테러 1타 강사가 되었다.


마침내 그는 거대 아파트 폭파라는 테러리스트 일생일대의 꿈을 포기하고, 테러리스트계의 전설이 되었다. 청출어람이라 했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 제자 중 위대한 테러리스트가 나올지 모른다며 밝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에라, 그냥 다른 데로 이사 가자.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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