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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Feb 21. 2022

뚱뚱보 고등어태비 고양이 마구로

고양이가 힘이 되는 순간, 힘이 드는 순간

4냥꾼 캣브로, 쉰네 번째 이야기




귀여운 돼냥이 구로, 힘이 된다


아내 없이 혼자 있는 집,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이내 가슴이 시리다. 가슴이 시린 건 혼자여서일까, 한기 때문일까? 이유를 분간할 수 없다. TV 앞에 자빠져 난로를 켜고 턱 끝까지 모포를 덮어 본다. 여전히 시린 느낌이 해소되지 않는다. 공연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유튜브 어플을 누른다. TV에서도 유튜브 영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


웬일인지 겁쟁이 구로가 조심스레 다가와 내 가슴으로 폴짝 뛰어오른다. 둔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의외로 기척은 조용하다. 생각해 보니 난 혼자가 아니었고, 뚱냥이의 기름진 털은 따뜻했다. 쓸쓸함과 쌀쌀함이 동시에 해결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뚱보 구로의 온기를 느껴 본다. 포근하고 따스하다. 숨을 쉬기는 조금 버겁지만 나는 지금 행복하다.


오늘의 주인공 뚱냥이 구로


배가 살살 아플 때는 구로가 제일 좋아하는 털 빗을 들고 가만히 누워 소리를 낸다. 털 빗을 본 구로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겁쟁이 구로가 유일하게 용기를 내는 순간이다. 빗질을 해 주면 아주 좋아 죽는다. 구로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바로 털을 빗겨 주지는 않을 작정이다. 나는 지금 구로를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명치 쪽에 빗을 가만히 올려놓고 녀석이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걸렸다. 구로가 미끼를 물었다. 뚱보가 내 배 위에 올라와 식빵을 굽기 시작한다. 슈퍼카 엔진 소리 같은 골골이 소리는 덤이다. 고양이가 내는 골골이 소리가 관절염에 효과가 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 정도 골골이면 골절된 뼈도 붙을 것 같다. 뚱뚱한 구로가 뜨끈하게 배를 지져 주니 더 이상 배가 아프지 않다. 할머니의 약손만큼이나 효과적이다. 구로는 배탈도 치료하는 우리 집의 약뚱보이다.


털 빗과 함께라면 용기백배!


똥스키 테러리스트 구로, 힘이 든다


요즘 집에 오면 불을 켜고 침대부터 확인하는 게 일과이다. 빌어먹을. 침대 위 낭자한 두 줄의 갈색 선이 보인다. 역시 오늘도 칠했군... 구로의 습관성 똥스키 때문에 귀가가 두렵다. 똥스키 테러에 소파까지 버리고 난 후, 며칠 괜찮아지나 싶더니만 요새 다시 테러가 시작되었다. 안방과 작은방을 오가며 침대에 똥칠을 한다. 구로의 현란한 엉덩이 놀림에, 아내와 난 숙련된 게릴라 부대를 만난 정규군처럼 맥없이 쓰러진다.


빨래통에는 똥 테러에 희생당한 이불들이 쌓여만 간다. 제길.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이제 1일 1빨래가 익숙하다. 가끔은 구로가 똥스키를 타지 않은 날도 방에 들어가 일부러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다. ‘또 묻혔어?’ 아내가 놀라서 달려온다. 양치기 소년도 시작은 이랬지. 이 짓이라도 해야 비극이 희극이 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내는 몇 번 더 당하고 나더니 이제 속지 않는다. 내가 장난으로 소리를 지를 때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진짜로 똥이 묻었을 때의 나는 소녀처럼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구로는 점점 과감해지는 중이다. 오늘은 자고 일어났더니 종아리께에 선명히 한 줄을 그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자객이 보는 경고의 메시지 같은 걸까? ‘어이, 캣브로. 다음번에도 밥그릇에 사료가 비어 있는 날에는 한 줄로 끝나지 않을 거야.’ 뭐 이런 건가? 아니면 짝꿍과 한 책상을 쓰는 어린아이의 유치한 장난 같은 것일까? ‘형아, 여기 이 선 밖으로는 넘어오지 마! 내 자리야!’ 하... 한숨밖에 안 나온다. 증말...


선명한 스키 자국을 올릴까 하다가,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아가 시절의 너를 올리는 내 심정을... 너는 알까...?


"스키 좀 그만 타라 이놈의 스키야. 재워 주고 먹여 주고 빗질도 해 주는데, 도대체 뭐가 불만이니. 이 괘씸한 뚱보 고양이야! 오냐오냐해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한 번만 더 똥스키 타 봐! 형아가 어떻게 하나. 휴... 어떡하긴 어떡하나. 또 세탁기 돌려야지... 됐다. 구로야, 매일 똥칠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매트리스에 이걸 묻혀, 말어? 그래... 묻히자! 신에게는 아직 열두 줄의 스키가 더 있사옵니다. 캬캬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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