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힘이 되는 순간, 힘이 드는 순간
아내가 기운이 없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속상해 보인다. 꿀잠을 자던 츠동이가 큰 눈을 껌벅이며 잠에서 깬다. 팔자 좋게 기지개를 켜고는 어슬렁 다가와 큰 몸을 아내에게 비빈다.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핀다. 내 마음도 덩달아 놓인다. 츠동이는 힘이 된다.
팔불출처럼 동생 자랑을 좀 해야겠다. 츠동이는 유명 사료 회사가 진행한 핸섬캣 대회에서 수상한 적도 있다. 상품도 받았다. 그것도 무려 사료 한 포대나. 돈 한 푼 안 벌어 오는 녀석들이 취향만 까탈스럽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공인된 핸섬캣 츠동이는 자기 밥그릇은 챙길 줄 안다.
꼬리도 짧게 태어난 녀석이 자기 잘난 건 아는지 평소에 좀 비싸게 구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손님이 오면 접대냥으로 돌변하여 집사의 면을 세워 주는 고마운 녀석이다. 의외의 구석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항상 기대하지 않는 순간에 힘이 되어 준다. 전역 후, 크고 외롭게 느껴지는 집에서 혼자 지내야만 했던 나의 마지막 20대도 츠동이가 지켜 주었다.
츠동이에게는 귀엽다거나 사랑스럽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확실히 첫째는 첫째다. 든든하고 기특하다. 츠동이가 우리를 챙겨 주고 보살피는 느낌이다. 귀찮아하면서도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모든 냥이 동생들이 하루에 한 번은 츠동이의 그루밍을 받는다. 츠동이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우리 집의 왕이다.
핸섬캣이고 나발이고, 왕 대접 해 주니 자기가 진짜 왕인 줄 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뜩이나 털도 민들레 씨처럼 날리면서 빗질 좀 했다고 성깔 부리는 건 예사고, 그 두껍고 큰 이빨로 형아의 손을 사정없이 깨무는 일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이다. 좀 만졌다는 게 이유이다. 어이가 없다. “편히 쉬고 있는 내 앞에 발라당 누운 건 너잖아. 만져 달라는 거 아니었어?” 괜찮다. 어차피 못생긴 손. 남자의 상처 하나쯤 더 생길 수 있지.
사료 한 포대 얻어오면 뭐 하나. 부숴 먹은 가재도구가 몇 개인데. 모니터를 부숴 먹질 않나, 친구네 데려갔더니 사람 키만 한 책꽂이를 넘어뜨리는 바람에 살인 고양이가 될 뻔하질 않나. 넘치는 에너지로 벽지와 소파를 걸레짝으로 만들고, 소중한 옷에는 누런 털들을 잔뜩 묻혀 놓는다. 츠동이는 힘이 든다.
"츠동아~ 그래도 누워서 쉬고 있는 형아의 배를 발로 꾹 밟고 지나가는 건 경우가 아니야~ 몸무게가 적당히 나가야 말이지. 이제 열 살이 다 된 아저씨가 밤에 우다다를 하다가 스탠드 난로를 넘어뜨리는 것도 좀 아니야~ 집이야 홀라당 타 버려도 상관없는데 너의 소중한 털이 타 버리면 안 되니까 하는 말이야. 형아가 하는 말 잘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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