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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Mar 02. 2022

노래하는 실버태비 고양이 가루비

고양이가 힘이 되는 순간, 힘이 드는 순간

4냥꾼 캣브로, 쉰다섯 번째 이야기




노래하는 개냥이 루비, 힘이 된다


외로운 친구 놈들이나 불러 한 잔 할까? 아니다. 어떻게 만들어 낸 일주일 짜리 금주 기록인데. 그럼 그냥 들어갈까? 아이씨. 아쉬운데... 어떡한담... 결국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 두 캔을 사는 것으로 나 자신과 협상한다. 허전한 마음을 겨우 꾹꾹 눌러 담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밖에서 보는 우리 집의 불이 모두 꺼져 있다. 왠지 더 외롭다. 괜히 더 도어록을 힘주어 누른다.


띡띡띡띡. 철컥. 먀~~~~~~! 중간 현관문을 열기도 전인데 루비가 우렁차게 목청을 뽑는다. 문을 여니 루비가 꼬리를 바짝 세우고서는 아주 난리를 피운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이다. 왜 이제 오냐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불만을 노래한다. 하지만 신이 난다. 기운도 난다.


"형아 왔다!" "루비야~ 너 고양이 맞아? 혹시 강아지 아니야? 아무리 봐도 고양이는 아닌 것 같아." 마끼가 떠난 집에서 날 반겨 주는 건 요 까불이 루비뿐이다.


마끼의 유지를 이어받은 2대 개냥이 루비의 주 서식지는 내 가슴이다. 초대 개냥이 마끼가 떠난 뒤, 유독 심해졌다. 아내는 마끼의 영혼이 루비의 몸에 들어간 것 아니냐고 항상 우스갯소리를 한다. 거실에 누워 있으면 루비가 눈치를 슬슬 보며 다가와서는 어느새 내 가슴 위로 올라와 눈을 감고 평화로운 골골이를 시작한다. 하루라도 집사의 사랑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모양이다. 쓰고 보니 중의적이다. 루비는 내 가슴 안에 산다.


잠잘 때조차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루비 덕분에 수면의 질은 좀 떨어졌다. 그럼에도 일상의 행복은 더해진 이 아이러니를 아시려나. 쌔근거리는 숨소리와 귀여운 코골이. 몸을 뒤척일 때면 발에 느껴지는 물컹한 뱃살. 포근하고 따뜻한 털과 가끔 얼굴을 간질이는 수염. 이내 루비가 기분 좋게 갸르릉거리며 내 팔을 베개 삼아 작은 머리를 누이고는 조그만 발로 팔을 감싸 안는다. 루비는 내가 주는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내게 준다.


엄마에게 안겨 형아를 바라보다. 나는 루비다.


미친 변태 고양이 루비, 힘이 든다


전에는 곤히 잠에 든 캣브로의 겨드랑이와 머리를 그루밍하면서 괴롭히더니 더 요상하고 못된 버릇이 새로 생겼다. 당해 보면 이게 진짜 뭔가 싶다. 차라리 겨루밍이 낫다. 요새는 자고 있는 내 입에 제 손을 올리고는 꾹꾹이를 한다. 처음 당했을 때는 벙쪄서 루비가 나를 공격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며칠 전에는 뽀뽀하는 꿈을 꿨다. 상대는 누군지 모르겠으니 그냥 아내라고 치자. 계속되는 거친 뽀뽀에 눈을 떴다. 아니, 눈이 떠졌다. 입술인 줄 알았던 촉감은 루비의 흑당젤리였고, 계속 발톱을 오므리는 탓에 내 소중한 입술이 다 트고 말았다.


내 입술을 훔쳐간 루비의 흑당젤리


아내에게 말했더니 잠결에 내가 착각을 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억울했다. 어느 날 아내도 보았다. 실신한 듯 자고 있는 내 가슴 위에 자리를 잡고는 한쪽 발을 쭉 뻗어 건방지게 입술 꾹꾹이를 하고 있는 루비를. 나는 불쾌감과 고통에 잠에서 깼고 아내는 깔깔 웃어댔다.                                        


아쉽게도 제대로 된 입술 꾹꾹이는 찍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발을 올리기 전, 루비는 마치 상대의 기운을 빼기 위해 잽을 날리는 복서처럼 턱 위에 발을 올린다. 아웃복서 스타일이다.


퇴근 직후에는 루비의 노래가 분명히 힘이 된다. 다만 10초 정도만 그렇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마실 때도, 맥주를 꺼내 거실에 자리 잡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루비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자기 좀 쳐다보라고 노래를 부른다. 마르지 않는 글감을 제공해 주는 루비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걸까.


"흠... 우리 루비는 무슨 말을 해 주면 좋을까? 음... 그냥 형아를 괴롭히지 않는 매 순간이 고마워 루비야!"


"쳇, 형아가 나랑 안 놀아 주니까 형아 친구나 괴롭히고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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