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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Mar 23. 2022

지금까지 이런 사고는 없었다. 고양이인가, 웬수인가?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 그리고 유골함

4냥꾼 캣브로, 쉰여섯 번째 이야기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정확히는 대형 사고가 터질 뻔했다. 사건의 범인은 역시 이 녀석이다. 서열 1위답게 항상 높은 곳에 집착하는 츠동이 말이다. 서두는 제치고 단도직입적으로 벌어진 사건부터 얘기해야겠다. 츠동이가 거실 선반으로 펄쩍 뛰어오르다 마끼의 유골함을 떨어뜨렸다. 내 심장도 같이 떨어진 건 비밀이다.


절대 작은 사고는 치지 않는 츠동이. 츠동이는 언제나 한방을 노린다.


인재(人災)다. 그래, 츠동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더 높게 선반을 설치하지 않은 것부터 선반 아래 밟고 오르기 좋은 캐비닛을 둔 것까지. 그리고 이게 제일 큰 잘못이다. 선반 위에 캣그라스를 올려 두었다... 초록색 풀만 보면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츠동이가 간식보다 좋아하는 게 바로 캣그라스다. 다시 말하지만 인재가 맞다. 이건 인재가 아닌 묘재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백번 참고 되뇌어 본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다행히 마끼의 유골함은 깨지지 않았다. 고양이 신의 가호가 있던 것일까. 도자기 유골함인데 용케도 버텼다. 안식을 방해하는 츠동이에게 따지기라도 하듯, 바닥에 떨어진 마끼의 유골함은 하늘을 향해 통통 튀어 올랐을 뿐이다. 츠동이에게도 기죽지 않고 덤비던 마끼가 돌아온 것 같았다.


내가 지었지만 참 재밌는 이름이다. 가끔 데마끼라는 이름을 보며 웃음 짓는다. 츠동이 이 웃기는 놈이 돌아가신 우리 아빠 사진은 안 떨어뜨렸다.


마끼가 들으면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 랜슬롯과 아서를 떨어뜨리지 않은 것도 정말 다행이다. 아 참, 랜슬롯과 아서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물고기 동생들이다. 어항까지 깨졌다면 어쩌면 츠동이에게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안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이놈이 뭘 알고 그랬겠는가. 아... 츠동이는 알고도 그리했을 놈이긴 하다.


랜슬롯과 아서. 대형 사고 후, 거실 선반 재정비를 위해 어항 하나를 잠시 책상 위에 옮겨 두었다. "루비야, 제발, 제발 아무 짓도 하지 마. 형아가 이렇게 부탁한다."
"고양이가 말 듣는 거 봤어?!"


고양이와 함께 지낸다는 게 여간 쉽지 않다는 걸 오랜만에 느낀 하루다. 큰 소동이 지나간 우리 집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온한 일상이 계속된다. 마끼는 다시 선반 위에 자리를 잡은 채 편안히 쉬고 있고, 츠동이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냐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시답잖은 교훈도 얻었다. 모름지기 물건이나 사람이나 잘 안 깨지는 것이 좋다. 며칠 전, 업무 중 악성 민원인에게 호되게 당했던 일이 생각나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빌어먹을...


"츠동이 엉아가 또 사고쳤쪄?" "츠동아... 자빠져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서 마끼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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