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해도 이렇게 흉악할 수 없다. 고양이 털 말이다. 「폭신폭신 고양이 털, 근데 이제 털뿜뿜을 곁들인」 편에서 소개했듯이 고양이들의 털 날림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털 색깔까지 모조리 다른 다묘 가정의 경우, 그 무지막지함이 배가된다. 집안을 굴러다니는 털들이야 청소를 자주 하면 해결되지만 옷에 붙은 털은 여간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외출 전 아무리 돌돌이(테이프 클리너)를 돌려도 어딘가에 털은 항상 붙어 있다. 좋은 점이 하나는 있다. 고양이 털을 발견한 옆 부서 집사 동료와 친해질 수 있다. 집사는 집사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런데 나쁜 점이 열 가지이다. 깔끔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옷에 붙은 털만으로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동료라도 있으면 한 순간에 민폐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이 자리를 빌려 전 직장 차장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츠동아, 같이 사과드려. 얼른.” 빨래가 완료된 옷 통은 웬만하면 선반 위에 올려놓는다. 푹신한 옷들이 가득 담긴 통은 고양이들에게 놀이 공원이나 다름없다.
어쩌겠는가. 털뿜뿜이 싫다고 요 풍성한 녀석들의 털을 모조리 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옷에 털이 붙지 않도록 하는 편이 최선이다. 정정한다. 털이 붙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나마 덜 붙게 하거나 붙은 털을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할 수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이렇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천국도 지옥도 내 마음 안에 있다. 털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한다 여기지 말고, 옷 정리를 더 깔끔하게 할 좋은 계기가 생겼다고 생각해 보자. 말은 좋다. 사회생활을 해야 고양이 밥도 사고 모래도 살 수 있는 법이다. 흉악한 털들로부터 집사의 소중한 옷들을 그나마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세탁이 끝난 옷은 꼭 테이블 위에서 개야 한다.
공중에서 접는 방법이 털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에는 가장 좋다. 하지만 가게 스타일로 예쁘게 옷을 정리하는 집이라면 세탁이 끝난 옷은 바닥이 아닌 테이블 위에서 개자. 털도 털이지만 테이블에서 갤 경우,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나풀거리는 옷들을 보고 고양이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소중한 옷이 발톱에 찍히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털이 붙기 쉽고 발톱에 걸리면 올이 나가 버리는 니트류일수록 바닥에서 옷을 개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2. 옷은 꼭 옷장 안에 보관하자.
털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다. 행거에 걸어 두어도 안심할 수 없다. 발걸음이 일으키는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날리는 털의 종착지는 옷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전기가 많이 발생하고 털도 달라붙기 쉬운 겨울 코트는 되도록 옷장 안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만약 옷장이 없고 행거만 있다면 가리개를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빨래 개는 남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마음을 비우고 빨래를 개다 보면 어느새 평화가 찾아온다.
표면에 왁스 처리가 되어 있어 털이 한번 붙으면 돌돌이로도 뗄 수 없는 바버 재킷은 아예 현관에 걸어 두고 있다.
3. 외출복을 입은 상태로는 눕지도 앉지도 말라.
외출복을 입었다면 당연히 누워서도 안 되지만 절대 소파에도 앉으면 안 된다. 귀가했을 때도 되도록 빨리 실내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명심하자. 외출복을 입은 상태로 누워도 좋을 때는 오직 술에 만취했을 때뿐이다. 아예 털이 잘 붙지 않는 플라스틱이나 철제 간이 의자를 하나 두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나는 이마저도 앉기 전에 손으로 한번 훑어내고 앉는다.
4. 이것도 저것도 다 귀찮다면 고양이 털 색에 맞추어 옷을 사자.
귀찮음이 하늘을 찌르는 집사의 마지막 방법이다. 괜찮다. 모래만 잘 갈아 주고, 밥만 잘 주어도 집사의 자격은 충분하다. 그냥 우리 집 고양이 털 색과 비슷한 옷만 사 입자. 그 색이 나의 퍼스널 컬러와 맞는다면, 축하한다. 천생연분이다. 그런데 다묘 가정은 사정이 좀 다르다. 흰 옷을 입자니 검은 고양이가 있고, 검은 옷을 입자니 흰 고양이도 있다. 특히 누렁이에 카오스까지 온갖 털 색을 가진 고양이들이 살아 숨 쉬는 우리 집 같은 경우라면 어떤 색을 입어도 위장(?)이 불가하다. 고양이 짬밥 십 년 캣브로의 소중한 꿀팁을 전수한다. 회색 옷을 입자. 그나마 옷에 묻은 모든 색의 털을 꽤 괜찮게 감추어 준다. 다행히 회색은 내가 잘 소화할 수 있는 색깔이다. 천운이다.
회색의 여인. 플라스틱 의자의 좋은 점은 우다다를 하다 부딪혀도 다칠 일이 없고, 의자가 넘어지더라도 바닥이 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내의 다리는 실제로는 저렇지 않다.
초보 집사가 고양이를 키우며 당황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상상을 초월하는 털뿜뿜이다. 이상의 지침만으로 집사의 소중한 옷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아직 멀었다. 특히 털 색깔이 모조리 다른 다묘 가정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고양이 털, 다시 말하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다음 편에서는 고양이 털과의 전쟁에서 집사들을 승리로 이끌 비장의 무기를 소개하려 한다.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