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에 놓을 침대를 사러 동네 매장에 갔을 때 일이다.
나는 푹신푹신한 침대가 좋다. 그 왜, <나홀로집에>에 캐빈이 누웠던 침대처럼 벌러덩 누우면 바닥까지 푹 꺼질듯 한 푹신푹신하고 말랑말랑한 침대. 나는 그게 좋다. 다른 사람도 그런 침대를 좋아할 것이다. 아니, 좋아한다, 좋아해야 한다. 왜냐하면 푹신푹신하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니까.
“손님?”
침대 매장의 직원이 나를 조용히 불러냈다. 그는 앞머리의 7할을 오른쪽으로 쓸어 넘겨서 스프레이로 착 고정했고 눈이 움푹 패였는데 얇은 금테안경을 써서 그 깊은 눈망울이 더 도드라졌고 입술은 보랏빛을 띠었는데 입꼬리가 아래로 쳐져서 약간 무뚝뚝한 인상을 줬다. 정장에 조끼까지 차려입어서 단정하고 고풍적인 느낌을 줬으나 좋은 원단은 아니었던지 마이의 어깨가 반질반질 빛났고 푸른색 와이셔츠 칼라의 뾰족한 끝은 까맣게 때가 타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어떤 상품을 찾고 계십니까?”
직원은 아주 사무적이지만 또 따스한 어조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여느 부부처럼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주변만 두리번 거리면서 매장 분위기를 살폈다. 손님으로서 좀 도도하게 보여서 협상의 우위를 점하고 싶은 무의식 중의 행동이었다. 어느 정도 손님과 직원 간 적당한 침묵이 유지됐고 또 그것으로 우리와 당신의 상하 관계가 어느정도 성립했다고 느꼈을 때쯤, 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흰,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침대를 찾고 있어요.”
“다시 한번 말씀 주시겠습니까?”
“아, 네. 푹신푹신한 침대요. 침대 중에 푹신푹신한 매트리스를 찾고 있어요.”
“푹신푹신한 침대라…”
직원은 ‘음…’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민했다. 푹신푹신한 침대가 어려운 말도 아닌데 깊은 사색에 빠진듯 했다. 그는 다시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제안했다.
“손님? 푹신함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진정, 푹신푹신한 침대가 좋습니까?”
사실, 조금 당황했다. 예의가 바른 듯한 무례한 질문이었다. ‘진정’이라는 단어 선택은 약간의 경멸도 섞여 있는 듯 했다. 그러니까 나는 침대를 구경하러온 천진난만한 소꿉놀이 신혼부부 아이들로 깔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질문에 정확히 무어라 답변해야 할 지 선뜻 생각나지 않았다. 아! 바깥 소음 때문에 혹시 내 말을 잘 못 들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물어보는 것일지도 몰라. 그래서 더 좋은 표현을 찾아볼까 하다가 아무렴, 푹신한 것이 좋으므로 다시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아, 옙! 저는 푹신한 게 좋습니다.”
나는 더 천진한 표정으로 푹신한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직원은 눈을 굴려 허공을 쏘아 봤다. 동시에 엄지와 검지로 콧잔등을 한번 쓸고서 아랫 입술까지 내려와 매만지기도 했다. 그러더니 힐끗 미소를 보이며 내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것을 ‘소프트(soft)’라고 합니다.”
맞다. 내가 찾은 침대는 소프트한 침대다. 어, 옳지. 그렇구나.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침대를 이 업계에서는 소프트라 부르는 구나. 그렇다고 난 이 뜻을 모르는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는 모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날 몰아갔다. 너무나도 진지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잔뜩 위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전문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다시 소프트보다 좀 더 하드(hard)한 벧(bed)을 레규—라(regular)라고도 하죠. 다시 묻겠습니다, 손님. 소프트가 좋으십니까?”
침대는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를 함께한 망각의 쉼터다. 이 직원은 침대의 역사적 맥락과 그 의의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이해한 자만이 그의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으리라. 나 역시 소크라테스나 데카르트가 사유했던 방식대로 대답해야만 할 것 같았다. 솔직히 동네 침대 가게 직원 치고는 대화가 너무 철학적인, 좀 이상한 녀석이라 생각했지만 나도 그 비슷한 부류였던 사람이라서, 별 의심없이 그를 ‘모피어스’라고 부르고 그의 세계에 복종하기로 했다.
“아, 선생님. 제가 매트리스는 잘 모르는데요. 어떤 매트리스가 있을까요?”
나는 무지(無知)를 고백하고 모피어스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자, 저는 이제부터 손님께 이 매장의 정말 다양한 벧(bed)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손님께서는 저에게 손님께서 원하시는 그 느낌만 제게 말씀주시면, 그걸로 된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아! 예. 느낌! 느낌을 말하라. 네, 좋네요.”
나는 긴장했다.
모피어스는 아무 말 없이 등을 획 돌렸다. 아내도 압도된 그의 자신감에 감화하여 내 팔짱을 더욱 단단히 옴켜잡고 그의 뒤를 좇았다.
나는 매트리스 세계에서 방금 깨어났다. 그러니까 나는 빨간약을 삼킨 ‘네오’였다. 모피어스는 나를 2층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분명 엄청난 매트리스 세계였다. 아! 매트리스다! 정말 다양한 매트리스들이야! 모피어스가 그 중 하나를 골라잡더니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선 설교하기 시작했다.
“자— 이 벧, 이 느낌. 어떠십니까? 끝에 살짝 걸터 앉아 보시죠.”
나는 침대 끝에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걸쳤다. 모피어스는 중앙의 스프링보다 가장자리 스프링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엉덩이를 이렇게 걸터 앉게 되면 가장자리는 중앙보다 더 집중적인 하중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모든 과학 기술을 집약했다고 무슨 수학 공식 같은 걸 예로 들어가면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뭐 좋은 재료를 썼다는 얘기다. 모피어스가 드디어 중앙에 누워보라고 허락했다. 나는 공손하게 신발을 벗고 발라당 누웠다. 모피어스는 웃으면서 신발은 신으라고 말했다. 나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신발을 주섬 주섬 챙겨 신었다.
“이번엔 어떠십니까? 소프트 하십니까?”
“아, 예. 소프트하네요.”
“조금 더, 느껴보시죠. 허리를 감싸는 느낌, 또 경추가 편안해지는 느낌. 그 모두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경추가 뭐에요?”
“아… 그, 목뼈를 말합니다. 자, 이제 일어나시죠. 다음 벧으로 가시겠습니다.”
그는 나를 일으켜 세웠고 또다른 매트리스로 안내했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했다. 아, 빌어먹게도 씨—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부드럽다. 푹신푹신하다. 솜처럼 부드럽고 푹신하고 말랑하고 그랬다. 허리도 편안했고 경추도 좋았다. 그런데 또 그냥 푹신푹신하고 부드럽다고 하기엔 푹신함의 본질을 질문할 것 같아 함부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치즈같이 고소하다는 공감각적인 심상으로 표현해볼까? 카라멜이나 과일향이 난다고 할까? 아니면 또 다른 전문적인 감상평을 해야 할까? 나는 이 세계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실질적이고 거래에 유효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매트리스를 좋아하나요?”
그때 모피어스는 침대 옆 싸구려 샘플 가구에 엉덩이만 살짝 걸친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긴장했다. 멍청한 자식! 난 큰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그는 개성과 몰개성의 사이에서 내 미학적 실력을 가늠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 질문은 문장 그대로 어떤 객관적인 통계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가가 보기엔 ‘보통사람이 많이 사는 걸로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 하는 몰개성류로 분류할만 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실망했을까? 그러니까 나는 그 질문 하나로 개돼지나 잡아대는 백정놈의 자식. 아무데나 멍석이나 깔아주고 바가지나 긁어주면 좋다고 드르렁 코를 골고 잘 상놈의 자식. 뭐 그런, 아무개 개똥이 누렁이로 분류된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이 단 한번 움찔거렸다. 한숨 섞인 조소가 입꼬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손님의 느낌, 그거 하나면 됩니다.”
야이, 씨팔놈아! 그려, 나 백정놈 개놈 쌍놈 개똥이 누렁이 자식이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느냐? 묻는 말에 재깍 대답이나 잘 할 것이지. 내가 시몬스교 12제자라도 되는 것이냐? 뭔 놈의 답변이 죄 교훈조더냐? 나는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매트리스가 좋다. 그래서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매트리스가 좋다고 말할 뿐일진대 그거면 됐지 얼마나 더 현학적인 표현을 바라고 있는 게냐? 나는 화를 속으로 꾹 눌러참았다. 계급제 사회에서 서로 다른 배경과 신분의 사람들인데 정상적으로 대화가 될리 없었다. 결국 나는 머릿 속에 맴도는 단 하나의 표현, 그 천박한 표현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워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소프트가 확정이로군요.”
모피어스는 나를 규정했다. 소프트의 한 가지 느낌만 따르는 단조롭고 못 배운 놈으로 정의했다. 세상 많은 음식 중에 ‘쪼꼬렛이 질루 맛있어요’ 하는 어린 아이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손님, 소프트도 여러가지의 느낌이 있습니다. 손님께 다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 느낌을 잘 보시고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문장 자체는 전혀 어려울 것이 없었으나 하여튼 답변하기 존나게 어려웠다. 내가 알고 있는 소프트에 다른 어떠한 성질이 있는 것인지 고민도 했다. 하지만 소프트는 그 소프트가 맞았다. 소프트란 단어가 갖는 다른 의미란 나로선 도저히 유추할 수도, 또 보태기도 어려웠다. 모피어스는 아까 것과 비슷하게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매트리스를 소개해줬다. 이젠 가장자리가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중앙에 누워보라고 했다. 너 따위에게 디테일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다.
아, 안타깝게도 아까 것과 비슷하게 푹신했고 부드러웠다. 내 등허리 엉덩이 팔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변화에 몇 번이고 집중하여 소프트의 분류학적 접근을 시도해 봤으나 나는 그저 부드럽고 푹신할 뿐이었다. 나는 이제 내 저급한 오감각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모피어스는 집요하게 물을 뿐이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자- 어떤 소프트가 좋으십니까?”
나는 2, 3층을 돌면서 모피어스의 매트리스 세계를 유유히 부유한 뒤 현실로 돌아왔다. 선택할 시간이 된 것이다. 그가 역설한 매트리스의 철학적, 물리학적, 의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 분류학적 접근을 통해 소프트한 매트리스 하나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두 개의 매트리스를 골랐다. 3층의 것과 2층의 것.
“그냥 다 좋은 것 같은데요. 3층에 있었던 게 좋았던 거 같기도 하고 2층에 있던 게 좋은 거 같기도 하고 그래요.”
“하하, 그러시군요.”
모피어스가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그리고 다시 내게 물었다.
“3층 매트리스는 어디 건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갑자기 모피어스가 얼굴 색을 바꾸고 단호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백화점.”
“아, 그럼 2층의 것은요?”
“그렇게 궁금해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건 대리점.”
“그래서요?”
그는 아무말 없이 씨익 웃었다.
뭐야? 뭐, 어쩌라고? 씨팔 진짜, 사람 정말. 백화점과 대리점이 뭐?
모피어스의 언어는 일반 서비스업 직원이라 하기엔 너무 철학적이고 관념적이고 이상적이고 난해했다. 질문을 하기도 답변을 듣기도 무서웠다. 나는 침대를 사러 왔을 뿐이지 침대라는 가구의 그 본질적인 성질을 고찰하려고 온 게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더는 가르침을 구하지 않았다.
모피어스는 비로소 사람 답게 생기고 사회성 있어 보이는 상담 데스크 직원 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상담원은 방실방실 웃으면서 뭐라 뭐라 했고 견적서 종이에 뭐를 뭐를 막 체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용히 견적서를 받아들었다. 440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 광화문엔 대통령을 탄핵하자며 100만 인파가 몰렸다는데 그들은 아무 고민 없이 440만이라는 숫자를 일필휘지로 써내렸다. 그 견적서는 귀족 가문에서 우릴 신사답게 문전박대하려고 작성해준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
그 문전박대의 견적서를 접어 들고 매장 밖을 나왔다. 낙엽이 바람에 쓸쓸하게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