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긍정 Jan 06. 2024

사랑은 낙엽을 타고 (Fallen Leaves)

영화 리뷰 (스포)


 어디서 이 영화를 알게 됐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누군가의 인스타에서였다. 영화의 이 메인 포스터가 나를 한눈에 사로잡았다. 검색해 보니, <2023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감독도 유명한 분 같은데 나는 이번 기회에서야 알게 되었다. 2017년 은퇴를 했다가 '사랑은 낙엽을 타고'로 복귀를 했다.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이런 멋진 영화를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다. 덕분에 아키 카우리스마키라는 감독도 알게 됐고, 다른 영화들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또 눈이 반짝반짝 해 진다.






 마트 직원인 안 사(여주).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챙기다 해고되어 다른 일자리를 찾는다. 가진 돈도 거의 없고, 일상에 웃을 일이라고는 전혀 없는 안사.

 마찬가지로 일상에 즐거움이라고는 없고, 술이 인생의 유일한 낙인 건설업 인부 홀라파(남주).


이 둘은 가라오케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별 일 없이 헤어지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안사의 새로운 일자리였던 펍 앞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커피 한 잔 할래요?"



홀라파의 제안에 커피를 마시고, 영화도 보고. 종일 데이트를 즐긴 안사와 홀라파.

"그럼 또 만날까요? 근데 이름도 모르네요."

"다음에 만나면 알려줄게요."라며 전화번호를 종이에 적어 건넨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잃어버리는 홀라파.




안사는 홀라파의 연락을 기다리고, 홀라파도 나름의 수소문을 하고 그녀와 만났던 영화관에서 한참을 서성여 본다. 또 영화관 앞에서 하염없이 안사를 기다리던 중, 드디어 그녀와 재회를 한다. 이때 내 마음속 영화의 명대사가 나온다.

"당신을 찾느라 신발이 다 닳았어요."

멋진 말을 덤덤하게 뱉는 홀라파. 이런 툭툭 내뱉는 배우들의 대사가 이 영화의 묘미다.



안사는 다음날 저녁을 먹으러 오라며 초대를 하고, 집주소를 이번엔 지갑 안에 꼭꼭 넣어 둔다.


 무사히 안사의 집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기는 두 사람. 안사가 준비한 스파클링 와인을 궁금해하던 홀라파는 와인을 원샷을 해버린다. 그리고는 술이 더 없냐고 묻는 홀라파. 몰래 재킷에서 술을 꺼내 마시는 장면을 안사가 목격한다. '술이 가족 모두를 앗아갔다'라고 이야기하며 '당신은 좋지만 술꾼은 싫다'라고 말하는 안사. '잔소리꾼은 싫다'며 그 말에 맞받아치고는 집을 떠나 버리는 홀라파. 신발이 다 닳도록 찾아다녔지만 술 때문에 한 순간에 엉망이 된 그녀와의 재회. 이 장면에서도 역시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대사가 인상 깊다.



허무하게 헤어진 후, 각자의 삶을 보내는 두 사람. 안사는 퇴근길에 안락사가 될지 모르는 떠돌이 개 한 마리를 입양해 온다. 안사가 개를 입양해 와서 목욕을 시켜주는데,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홀라파는 전에도 그랬듯 또 술을 마시며 일을 하다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그 후로 더 많은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방탕한 나날을 보내다 갑자기 뭔가를 결심한 듯 가지고 있던 술을 다 버리고 안사에게 전화를 건다.


당장 안사를 만나러 가는 홀라파.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 뒤, 안사가 창문으로 그가 오기를 기다리다 결국 불이 꺼진다.



 안사는 입양한 강아지 채플린을 산책하다 우연히 만난 홀라파의 전 직장 선배를 만난다. 그에게 홀라파가 기차에 치여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사는 바로 그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간다. 그 뒤로도 자주 찾아가 누워있는 그에게 말을 건네며 애정을 보여준 안사. 집으로 향하던 중 그가 깨어났다는 전화를 받는다.



홀라파, 안사 그리고 채플린의 행복한 뒷모습을 끝으로 영화가 막을 내린다.







 무미건조하고 퍽퍽한 그들의 일상에 찾아온 사랑. 어렵고 어렵게 돌고 돌아 힘겹게 만난 두 사람이다.



 영화의 중간중간 라디오에 전쟁 중계가 나오는데, 감독이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를 결심한 이유가 바로 이 전쟁 때문인 것 같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전쟁에 시달리던 중,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주제에 관해 쓰기로 결심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연대, 희망, 타인에 대한 존중, 자연, 삶과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재미없고 쓸쓸하기만 한 인생에 찾아온 사랑, 그리고 홀라파의 죽음의 경계선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희망과 삶. 인터뷰를 보고 나니 영화의 내용이 더욱 이해되고, 감독이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빠른 전개, 전체적으로 뭔가 뚝뚝 끊기는 느낌, 간결하게 할 말만 하는 대사, 필름 영화 같았던 영상, 현재가 아니라 과거인 것 같은 분위기와 쓸쓸함. 모두 다 좋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안사의 집이 너무나 취향저격.

안사가 항상 식탁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 스탠드 조명과 소파, 채플린과 누워 있는 침실. 색감과 구도 모두 너무 예뻐 감탄했다. 이것 또한 영화를 볼 때 한 가지 재밌는 요소일 수 있겠다.



장르가 로맨스이지만, 간질간질 콩닥콩닥한 그런 로맨스 영화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보다 보면 포스터에 적혀 있듯 어느새 두 사람 나름의 로맨스에 빨려 들어가 있다.

 최근에 로맨스 영화를 몇 편 봤지만 이런류의 로맨틱 코미디 새롭고 좋다.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웃음 포인트 또한 빵 터질 것까지는 없었지만 이런 식의 유머 코드 아주 좋았다.



 

이 영화만의 독특하고 빈티지한 느낌의 잔상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은은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