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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가장 흔한 모습은 사랑임을

결혼을 준비하다 보니

by 순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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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엄마 아들)는 어느 날, 방 안에서 홀로 울고 있는 나를 우연히 보고서부터 내 방에 찾아와 누워 있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깊은 우울 속에 있었다.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보통 사람들처럼 모니터를 켜놓고 있었다.


하얀 화면을 바라보는 빈 눈동자에서는 생에 대한 일말의 의지도 찾을 수 없어 결국 눈물이 먼저 삶을 찾겠다고 얼굴 밖으로 흘러나오곤 했다. 퇴근한 오빠는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지나 책상 뒤편 침대에 누워 고양이들을 불렀다.


"솜이야~, 유자야~" 하고.


마치 내가 고양이들을 데려오며 삶을 조금 더 살아보고 싶어 했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없이 곁을 지키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불러 나의 정신과 의지를 다독여 주었다. 요즘은 혼자 우는 일이 없어졌지만, 오빠는 여전히 내 방에 자주 들른다. 웃긴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허공에 흩뿌리듯 풀어놓는다. "고양이 보러 왔다"라고 핑계를 대지만, 고양이들이 모두 거실로 놀러 가버려도 오빠는 한참이나 내 방에 누워 있다.


결혼을 준비하다 보니, 이런 시간들이 나를 얼마나 굳건히 지켜줬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피곤했을 텐데도 내 방에 들러준 오빠의 사랑.
쓰레기를 버리러 가자며 방 안에만 있던 나를 불러낸 엄마, 아빠의 사랑.
아파트에 꽃이 피었다며 출근길에 연락을 주던 아침의 사랑.
자는 나를 바라보며 이불을 덮어주곤 새벽에 출근하시던 아빠의 사랑.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사랑이 대체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생겼다'라는 말은 없던 것이 태어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나를 살아있게 한 무수한 사랑들과 다정하게 나를 맞아주었던 모든 시간이 이어져, 나는 감히 선언한다.


나는 이제 죽음의 끝자락도 생각해보지 않고 맹렬히 사랑을 하며 이 삶을 살 것이다. 나의 가족을 만난 이번 삶은 행운으로 가득하다. 행운의 가장 흔한 모습은 사랑임을, 알게 된 이 시간부터 삶은 달라질 것이다.


겨울에 피어난 새순을 보며, 늦게라도 피어나는 나를 다른 계절에 어울리는 꽃이라 믿어주었던, 기다려주는 가족의 사랑. 나는, 나는... 정말 태어나길 잘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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