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두비 Aug 12. 2022

이름 모를 너를 보내며

세상을 쥐어짜서라도 너희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보고 싶다. 어린 발걸음에 졸망졸망 뛰어다니던 삼 남매야. 다음 생엔 인간이 없는 지구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우리는 우리를 죽이며 반쯤 잠겨가는 배에 올라탔어. 높이 뛸 수 있으니 우리가 저 아래로 잠길 때, 그때 힘껏 뛰어 건물을 오르렴. 인간은 사라져도 자연은 콘크리트 빌딩 사이로 자랄 거란다. 날아가는 새를 보며 행복하렴. 너를 덮은 수풀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바람을 흠뻑 맞아보렴. 그 작은 네 코에 바람이 물씬 들어 두근거리도록, 세상이 깨끗해질 거야.  


존재에 대한 해명을 할 때마다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어 진다. 인간이 본성 속 어딘가 가지고 있다는 선함이 드러나지 않는 요즘, 아기 고양이에게 인간은 무섭기만 한 존재다. 갓 태어난 그 생명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그의 엄마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위협에 뱃속에서부터 웅크렸으려나.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새끼는 결정할 권한도 없이 세상 속으로 밀려 나왔다.


그리고 어미가 그렇듯 새끼도 사람의 눈에 띌라 새까만 색을 가지고 태어났다. 붉은 벽돌 위, 설령 자길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한껏 움츠렸다. 벽돌 하나의 길이도 되지 않는 몸집, 곧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그 생명의 부피. 더 움츠려봤자 벽돌 하나, 쌓아 올려진 드높은 건물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지상 위의 벽돌 하나가 이렇게 나는 슬프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겁먹은 표정이 시리다. 해명할 기회가 있다면, 내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고양이 세계에는 각자의 이름이 있다고 하는데, 너에게도 이름이 있었을까. 불러주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했던 너의 이름. 우리 세상의 말로다가 노랑아, 까망아라고 부르는 것이 왠지 미안해. 잠깐이었지만 머물렀던 우리 세상이 혹독했을 것 같아서, 이런 곳에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을까 봐.


고양이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너를 보며 생각했는데. 전할 기회도, 해명할 기회도 없이 오해만 쌓였네. 태어나면서부터 겁먹지 않고, 그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모두가 우리 세상엔 착하고 덩치가 큰 순한 생물들이 산다고 말하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목이 마르다 싶으면 물을 채워주었고, 가끔 밥보다 더 맛있는 걸 주곤 하니 위험할 땐 그의 곁으로 가란 말을 하는 때가 오길.


하지만 지금은. 우리 목숨도 귀한 줄 모르는 이 세상은. 안타깝게도 너흴 지켜줄 사람만이 해명을 하곤 한다는 것을. 이렇게 그리워 목놓아 운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아무도 믿지 말고, 도망가. 나는 더 용기를 내어 네가 좋아하던 햇볕 드는 그 수풀을 지키고 설게. 어느덧 네가 누운 부푼 땅이 꺼지고 또 다른 어린 고양이가 뛰어놀 때까지 깨끗한 물을 부어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