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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Aug 12. 2022

바람은 죽음, 죽음은 바람

남은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땅에 남은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내 세상에는 비쩍 마른 새로운 고양이 가족이 등장했다. 가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아예 우리 동 근처로 이소를 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밥이 늘 있고, 오빠가 부산에 머무는 동안 내내 물을 챙겨준 덕분에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일 것이다. 오빠가 서울에 자리를 잡은 지금, 오빠를 대신해서 물을 부어주고 있다. 처음엔 훤히 보이는 발치의 수풀 속 땅도 믿지 못해서 물을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내가 가진 병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제대로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땅마저도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하지만 그런 위태로운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새로운 고양이 가족이다. 어둑해진 퇴근길,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데 치즈색 궁둥이가 보였다. 아직 새끼라 숨는 게 어색한 건가 싶어 다가갔다. 소리에도 반응이 없는 작고 가냘픈 존재. 들썩거리는 것이 미약한 숨은 붙어 있었다. 늦은 퇴근임에도 저녁 밥상을 치우지 않고 기다려주고 있던 엄마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몸이 아픈 고양이가 있다고 물이든 뭐든 가지고 나와달라고. 엄마는 여린 나를 걱정하며 빈 속일 텐데 밥부터 먹자고 했다. 그렇지만 고양이 세계의 시간은 너무나 빠른 걸 알고 있기에 시간이 없어 보였다.


곧이어 엄마가 깨끗한 물과 사료 한 줌을 챙겨 나왔고, 움직일 힘이 없어 보이던 그 아이에게 마시기 쉽도록 낮은 그릇에 물을 부어 건넸다. 아이는 코 앞까지 가져다 둔 물도 찾지 못했다. 그러더니 분주한 내 마음이 불편했던 건지, 빽빽하게 자란 키 작은 나무 아래로 몸을 숨겨버렸다. 그래, 차라리 깊은 잠을 푹 자. 우리 의사 선생님이 잘 자면 다 낫는다고 그랬어. 정신과 치료가 어떤 증상만 없애는 줄 알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 나를 원래 궤도에 올려놓는 치료라고 했단 말이야. 첫 번째는 잘 자기. 그러니까 너도 잘 자면 나을 거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아무 일 없단 듯 또 흘러갈 밤의 고요함 속에 아이를 내버려 두고 자리를 떠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가 출근길에 전화가 와서는 아이가 죽은 것 같다고 했다. 차마 그 자리를 보지 못해 나는 지름길을 두고 한 바퀴를 삥 돌아 출근했다. 바람이 부는데, 바람이 준비되지 않았던 내 얼굴을 만지는데, 바람이 내게 말을 걸었는데. 바람과 죽음은 같은 거라고 했다. 바람은 늘 새로 불어온다. 어디가 꼬리인지, 어디가 얼굴인지도 모르게. 생과 죽음도 어쩌면 시작과 끝이 아닐지도 모르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 바람이 슬퍼, 지지는 말자고 다짐하며 출근했다.


케케 묵은 내 바람은 죽는 것, 그리고 이젠 작은 생명을 죽음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새로운 바람. 나는 투쟁같이 힘들던 시간을 지나왔고, 마침내는 어떤 것이라도 해볼 요량이 생겨있으니까. 그 마음 하나면 불어오는 바람에도 얼굴을 내어줄 수 있다. 찡그리고, 싱그럽게 웃고, 바람이 가져올 모든 것들을. 그리고 엄마의 퇴근 시간쯤, 엄마는 아이가 살아있다고 전화를 남겼다. 마, 약이 필요해. 동물 병원 가서 눈 주위가 다 헐었다고, 허피스라고 말해보고 약을 먹이자. 우리,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해보자.


엄마는 곧장 7일치 약, 동물병원 원장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3일치 약을 더 받아 오셨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와 나는  캔 하나에 약 두 포를 섞어 나갔다. 고양이 가족에게 주기 위해 나서는 내 발걸음이, 자해로 다 까져버린 내 발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생의 의지로 가득했다. 또 다시 노랑이, 까망이, 어미 하얀이. 앙상한 세 가족 앞에 밥을 내려놓으니 며칠을 굶은 것 마냥 밥을 먹었다. 유독 약한 노랑이는 그 날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어미와 형제가 건강해 지면 노랑이를 조금 더 잘 돌봐줄 것만 같았다.


더불어, 이 아이를 당장 병원에 데려갈 수 없는 나의 삶이 기구하고, 당장 우리 집으로 데려갈 수도 없는 내 마음이 보리수 열매같았다. 나에겐 내 삶보다 중요한 고양이가 둘 있고, 이 아이들이 일단 먼저. 그리고 내가 세 마리 까지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엔 당연히 불가능하단 답이 나오는 내 마음. 온전히 둥글지도 못한 채 까만 점 하나와 붉기만 한 마음.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열흘 치의 약을 열심히 챙겨먹이고  또 깨끗한 물을 부어 이번엔 노랑이를 조금 더 이 세상에 머물게 하고 싶다. 내 생일쯤 노랑이의 색깔같은 은행 나무 밑 세 가족을 보는 것이 새로운 바람. 내 바람은 죽음, 과거형이 되었다.

 

*밥을 준 후, 그릇을 다시 수거하여 미관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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