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_프랑스 파리
아이들은 파리에 머무는 동안 프랑스가 한국이나 중국보다 못한 후진국이 아니냐고 자주 물었다. 하필 우리가 머물 때 기온이 40도 가까이 오르는 이상기후였는데,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에어컨을 켜지 않는 곳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서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아침부터 냉수마찰을 하면서 아예 확신을 하게 되었다.
여행비를 아끼기 위해 골랐던 저렴한 호텔이 위치만은 정말 훌륭했다. 호텔을 나서면 바로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 파리시청(Hotel de Ville)이 보이고, 조금 더 걸으면 샤틀레(chatelet)가 나왔다. 시테 섬으로 건너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파리 여행 전 정보를 검색할 때마다 두려웠던 건 호시탐탐 여행객의 가방을 노리는 소매치기와 집시들이었다. 갑자기 다가와 옷에 토하는 바람에 옷을 닦느라 가방을 잠시 내려놓는 사이 가방을 들고 튀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나는 어린아이를 둘이나 데리고 다니는 어리바리한 관광객이라 타깃이 되기 쉬울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아이들과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는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메트로는 아예 타지 않기로 여행 방침을 정했다. 대부분의 목적지를 걸어갈 수 있는 곳들로 정했다. 가방을 어깨에 바싹 메고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아이들을 양손에 꼭 붙잡고 종종거리며 걸었다.
파리 시청, 샤틀레, 시테 섬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로 가기 전 마지막 생활을 했다는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와 생트 샤펠(Sainte Chapelle)을 지나 목적지인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했다. 신혼여행으로 처음 파리에 왔을 때 남편과 함께 갔던 곳을 두 아들을 데리고 가니 기분이 묘했다.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고 목적지를 찾은 것만으로도 감격했다. 성당 안을 대충 돌아보고 나와 돌아가려는데, 아이들이 성당 꼭대기 탑에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성당 주위를 돌며 눈치를 보다가 성당 옆으로 난 긴 줄이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란 걸 알았다. 표를 미리 다른 곳에서 사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줄을 서면 되는지 묻느라 잠시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 갑자기 줄이 훨씬 더 길어져 버렸다. 사람 많고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관광지는 패스하던 평소 버릇대로, 다른 곳으로 가자고 아이들을 설득했다. 파리에는 이곳 말고도 볼 곳이 아주 많다는 말을 덧붙이며.
엄마,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되잖아!
누가 엄마고, 누가 아이인지. 적당한 대꾸를 찾을 수 없던 나는 두 아이의 손목을 잡고 줄 맨 끝으로 가서 섰다.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보니,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수가 아주 적었다.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40도 가까운 기온에 땡볕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는 일은 어쩌면 나보다 이제 겨우 여설, 일곱 살인 아이들에게 더 고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불평 없이 기다렸다. 아니 나름 그 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난간을 붙잡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자기들끼리도 잘 놀았다. 오전 10시쯤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정확히 두 시간을 기다렸을 때, 마침내 422개나 되는 계단을 밟으며 돌고 돌아 북쪽탑에 오를 수 있었다.
마침 정오가 되자,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길고 아름다운 소리였다. 13톤이나 되는 남쪽 탑의 거대한 종소리가 가까이 들려오자 온몸이 함께 진동했다. 아이들의 흥분한 목소리가 더해졌다.
엄마, 진짜 에펠탑이 보여.
프랑스라면 에펠탑과 개선문, 그리고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 밖에 모르는 아이들이니 에펠탑을 눈으로 확인하자, 비로소 프랑스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모양이었다.
멋진 파리 시내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았고, 시야가 탁 트이는 탑 꼭대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지만, 그렇게 오래 기다려서 그곳을 올라갔다는 그 경험 자체가 더 소중했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두 번째 방문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다시 온다 해도 나는 탑 꼭대기에서 울리는 정오의 종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후에도 종종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오면, 아이들이 내 손목을 잡아끌던 그 여름을 생각한다. 더구나 2019년 4월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소식을 들었을 때는 소름마저 돋았다. 그 끔찍한 화재로 노트르담 대성당은 첨탑과 그 주변 지붕이 붕괴되었고, 2024년인 지금도 여전히 복구 중이다. 중세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3대 성당 중 하나에 올라가는 행운을 누린 건 나를 설득한 아이들 덕분이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책과 함께’ 등의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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