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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17. 2024

이건 펭귄이 아니야, OO야!

빨미르 동물원 _ 호이앙(Royan) 프랑스 

상하이, 베이징, 따롄, 서울, 샌디에이고에 이어 프랑스의 호이앙(Royan)에까지 와서도 아이들은 동물원에 가고 싶어 했다. 어느 동물원에 가도 비슷비슷한 동물에, 비슷비슷한 쇼. 두 살 때부터 동물원 구경을 다녔으니 이제 지겨울 만도 한데, “동물원 갈까?” 하면 여전히 “와, 신난다!”하는 반응이 나온다. 어린아이들에게 동물원은 어딜 여행해도 절대 빠뜨릴 수 없는 ‘all time favorite’이다.


빨미르 동물원 (Zoo de la Palmyre)


빨미르 동물원 (Zoo de la Palmyre)은 규모가 크지 않고 아담해서 정겨웠다. 트램이나 다른 탈것의 도움 없이 아이들 걸음으로 동물원 전체를 걸어서 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 캐러멜 팝콘처럼 보이는 동물 먹이를 한 봉지씩 사들고 동물 구경을 시작했다. 기린도, 타조도, 홍학마저도 캬라멜 팝콘을 좋아했다. 아이들은 직접 기린에게 먹이를 주었다. 기린 혓바닥이 손에 닿는 감촉에 깜짝 놀라고는, 그 재미에 먹이 주는 일을 멈출 줄 몰랐다. 한 봉지를 금세 다 주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기린 혓바닥이 손에 닿는 감촉에 깜짝 놀라



아이들은 염소와 양을 풀어놓은 패팅 주(patting zoo)에 들어가 염소와 양을 쓰다듬으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귀여운 동물 보는 재미에 오물 냄새도 견딜만한 모양이었다.


염소와 양을 풀어놓은 패팅 주(patting zoo)


펭귄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펭귄이 나타났다. 친구의 프랑스인 남편, 스테판이 펭귄을 가리키며 펭귄이 아니라고 했다. 펭귄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펭귄이 아니야? 신기하다 싶었지만 마음에 새기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얼마 후 아나톨 프랑스의 <펭귄의 섬>을 읽다가 반가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책 속에 ‘펭귄'과 ‘망쇼(manchot)'에 대한 언급이 있어 스테판의 말이 기억났던 것이다.


"프랑스 말로 ‘펭귄’은 북극에 사는 펭귄을 말한다. 반면에 남극에 사는 펭귄들은 ‘망쇼’라고 부른다. … 정반대의 극지방에 서식할 뿐만 아니라 부리, 날개, 발 등에서 차이가 있는 두 종에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것이 합당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리라."

-아나톨 프랑스 <펭귄의 섬> 중


<펭귄의 섬>은 소설이지만, 펭귄과 망쇼의 차이점을 거짓으로 적었을 리는 없었다. 스테판이 해준 말과도 일치하니 신빙성이 더해졌다. '남극엔 펭귄, 북극에는 북극곰…' 공식처럼 아이들 입에서 나오던 상식은 그럼 상식이 아니고 틀린 정보였나. 정말 북극에는 북극곰과 펭귄이 사이좋게 살고 있는 걸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펭귄은 프랑스어로 '망쇼'


"펭귄의 분포는 대부분 적도 아래 갈라파고스제도에서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및 아남극 해역의 제도를 거쳐 남극대륙에 이르는 남반구에 그치며, 따뜻한 지방의 경우에는 남극의 차가운 한류가 닿는 범위까지이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화석도 나오지 않는다."

[두산백과] ‘펭귄의 분포’ 중


펭귄은 북극은커녕 북반구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백과사전은 분명 북극에는 펭귄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하지만 1921년 노벨상 수상자인 아나톨 프랑스는 그렇다 치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스테판마저 펭귄은 북극에 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뭔가 석연치 않았다.


펭궹(pingouin)과 망쇼(manchot)를 불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둘 다 뜻이 ‘펭귄’이라고 나온다. 검색을 불어 사전에 한정하지 않고 좀 더 넓혀 보았다.




불어를 모르는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펭궹(pingouin)이 북반구에 사는 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검색은 계속되었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펭궹'에 ‘크다’는 뜻인 ‘그랑(grand)’을 붙이면 ‘그랑 펭궹 (grand pingouin: 큰바다쇠오리)’이 된다는 것을 찾아냈고, 마침내 위키피디아에서 큰바다쇠오리의 사연을 접하게 되었다.


‘큰바다쇠오리’ - 라이프치히 박물관의 표본


"큰바다쇠오리는 바다새의 일종으로 북대서양과 북극해에 분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획 때문에 1844년 6월 3일에 멸종했다.

...

이 새는 외관도 동작도 펭귄을 닮았으나, 분류학적으로 연관성은 없다. 본래 ‘펭귄’이라고 불리던 새는 분류된 속의 이름 ‘Pinguinus’를 가진 이 새였다. 예부터 웨일스나 브르타뉴 사람들은 이 새를 ‘Pen-gwyn’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말은 고대 켈트어로 ‘흰머리’를 뜻하며, 새의 머리에 있는 흰 반점에서 유래한 호칭이다. 뒷날 남반구에서 큰바다쇠오리를 닮은 새가 차례로 발견되어, 바다쇠오리가 멸종한 지금은 그 새를 ‘펭귄’으로 부르게 되었다."

[위키피디아] ‘큰바다쇠오리’ 중


우리가 아는 펭귄을 가리키며 펭귄이 아니라고 했던 스테판의 말은 옳았다. 우리 눈앞에 있던 그 새는 ‘펭궹(pingouin)’ 곧 큰바다쇠오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새는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펭귄’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남극의 펭귄은 본래 펭귄이었던 바다쇠오리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펭귄’이 되었다. 남극의 귀여운 펭귄은 ‘펭귄’이 맞지만, 사실 진짜 ‘펭귄’은 아닌 셈이다.


저건 펭궹(pingouin)이 아니야. 망쇼(manchot)야.


진짜 펭귄 ‘펭궹’은 동물원에서 볼 수 없다. 아무리 세계 곳곳의 동물원을 구석구석 뒤진다 해도. 어디에나 늘 다니던 동물원 여행이라 큰 기대 없이 갔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귀여운 ‘펭귄’ 아니 ‘망쇼’ 덕분에 북극에 사는 펭귄을 찾아다니는  뜻밖의 언어 여행을 덤으로 얻었다. 언어가 세상을 돌며 재미있는 흔적을 남기고 또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역시 어디를 가느냐보다 중요한 건, 어디서든 낯설게 볼 수 있는 내 시선이다.


엄마, 나만 따라 와!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책과 함께’ 등의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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