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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24. 2024

3분이면 내려올 수 있는 길을 75분 걸은 이유

스르지 산 케이블카_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에서 장거리 이동을 피할 수는 없었다. 부메랑처럼 구부러진 지도만 봐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여행지가 모두 아드리아 해변을 따라 띄엄띄엄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자그레브 -> 플리트비체 -> 스플리트 -> 두브로브니크 순으로 여행했다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아바타 촬영지로 유명한 플리트비체를 거쳐 스플리트에 이르렀을 때 멈출까 고민했지만,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두브로브니크는 하필 아드리아 해변을 따라 남북으로 길쭉하게 이어지는 땅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땅끝이라 불릴만했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야 한다는 내 걱정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두 아이는 두브로브니크에 꼭 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크로아티아 여행


두브로브니크에서 조금 더 남쪽에 있는 믈리니에 있는 숙소에 겨우 짐을 풀었을 때, 우리는 장거리 버스 여행으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집에 도착하자, 집주인 아나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는 직접 담근 포도주를 환영 인사와 함께 건넸다. 달짝지근한 포도주를 홀짝이며 믈리니 해변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이 아름다운 바다를 눈에 담기 위해 그토록 멀리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을 얻어 일주일을 머물렀다. 


아이들과 나는 손바닥만 한 테라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 먹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침 일찍부터 이미 강렬하게 쏘아대는 태양빛 아래 꿀을 듬뿍 바른 빵을 천천히 씹었다. 햇빛과 함께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이들과 성경을 읽었다. 아침 일찍 함께 성경을 읽는 건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매일 해오던 습관인데, 여행 중일 때도 예외는 없었다. 


타월과 물을 챙겨 들고 집밖으로 나오면 작은 집들 사이로 오솔길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바다가 나온다. 바닷가에 산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낮게 드리운 커다란 소나무를 파라솔 삼아 그 아래 비치타월을 폈다. 바닷물이 마치 깊은 산속에서 솟아나는 약수처럼 맑고 투명했다. 아이들이 바닷물에 들어가 시원하게 물장난 치고 수영하는 걸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망가뜨리기 전의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특권이다. 나 역시 수많은 관광객 중 하나였지만, 크로아티아의 맑은 바닷물을 볼 때마다 언젠가 오염되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닷물이 마치 깊은 산속에서 솟아나는 약수처럼 맑고 투명했다


MBTI를 하면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J가 아닌 P다.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여행을 가기 전에 어디를 갈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말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일주일을 머문다는 것만 정해졌을 뿐, 그 시간 무엇을 할지는 매일매일 결정해야 했다. 그날 아침 기분에 따라, 누군가 제안을 하고 반대 의견이 없으면 그대로 따랐다. 지도를 들고 길을 안내하는 건 언제나 막내아이가 맡았다.


마침 월드컵 기간이라 크로아티아 유니폼을 입고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하기도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으로 나갔다. 미로 같은 골목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낡은 담장 사이에 널린 빨래들이 햇볕을 받아 바삭하게 말라가는 걸 보았다. 돌벽 위 낙서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했고, 작은 가판대 위에 손수 짠 레이스나 올리브오일, 라벤더 포푸리 등을 파는 사람들과 흥정하기도 했다. 레이스로 짠 십자가 목걸이를 하나 샀다. 두브로브니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걷기만 해도 좋은 곳이었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잘 보존된 성벽을 따라 그 위를 걸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성채를 따라 걷다 보면, 두브로브니크 도시의 전경과 아름다운 붉은 기와지붕, 푸른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성벽을 따라 걷다 성벽 밖 절벽에 위치한 카페 부좌(Cafe Buza)에 도착했다. 절벽 위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한 사람이 바다로 뛰어들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큰아이의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뛰어내릴래.” 


큰아이는 겁이 없고 모험을 좋아한다. 아파트단지 안 연못 위에 드리운 버드나뭇가지를 잡고 타잔처럼 물을 건너기도 하고, 롤러코스터를 탈 때 터질 듯 심장이 뛰는 그 기분을 좋아한다. 살얼음 위를 걷다 연못에 빠진 적이 있음에도 다음에 얼음을 보면 또 그 위를 걸어본다.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큰아이가 얼마나 뛰어내리고 싶어 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내 눈에 절벽은 너무 높고, 바다는 너무 깊었다. 큰아이 손을 붙들고 나중에 아빠랑 같이 오면 그때 뛰어내리자고 설득했다. 엄마는 수영을 못해 네가 빠져도 구해줄 수가 없다고.


두브로브니크 스르지 산 케이블카에서 본 풍경


큰 소동 없이 잘 지내다 두브로브니크를 떠나기 전날, 우리 셋은 스르지 산 케이블카를 타느냐 마느냐를 놓고 열띤 토론을 했다. 모험을 좋아하는 큰아이는 당장 타고 싶다고 했다. 반대로 겁 많고 조심성 있는 막내아이는 는 케이블카 타는 걸 반대했다. 케이블카 줄이 갑자기 끊어지거나, 우리가 탔을 때 날씨가 나빠져 바람이 세게 불면 어쩌냐는 걱정 때문이었다. 여러 번의 민주적 회의와 타협을 거쳐, 스르지 산에 올라갈 때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는 걸어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케이블카를 타면 3분 걸릴 산길을 75분 걸려 내려왔다


케이블카로 산에 올라가는 데는 3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길을 찾아 돌아내려오는 데는 1시간 15분이 걸렸다. 걸어 내려가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지도(地图)자인 막내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험한 산길을 내려갔다. 우리가 밟는 곳이 길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함께 상의해서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후 겪은 처참한 내전의 흔적


마침내 산 아래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하자, 셋 다 만세를 불렀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면 느낄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걸어 내려온 덕분에 산속에서 크로아티아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후 겪은 처참한 내전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마침 산에 올라오기 전에 전쟁 사진 기념관에서 전쟁의 아픈 사진들을 보고 난 후였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아이들은 힘들어도 걸어 내려오기 잘했다고 했다. 3분이면 내려올 수 있는 거리를 1시간 넘게 걸으면서 두브로브니크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고. 길 안내를 맡은 막내아이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엄마라고 해서 마음대로 결정하거나 내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한 달 여행을 아홉 번이나 했지만, 민주적 분위기 때문인지 아이들과 나는 길 위에서 다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길 위에서 우리는 지극히 평등했다.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건 엄마인 나였는지 모른다.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라는 커뮤니티를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4년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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