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도서관_싱가포르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든 도서관부터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디즈니랜드에 맞먹는 즐거운 곳이다.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은 창마다 불이 밝게 켜진 높은 건물이었다. 신분증 검사도 하지 않아 외국여행객인 우리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어린이 도서관은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책일 읽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이런 도서관이 집 근처에 있다면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도서관처럼 규모가 큰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숙소 근처에도 작은 도서관이 잘 꾸며져 있어 싱가포르에 머무는 동안 여러 번 들러 아이들과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책을 좋아했다. 많은 다른 한국 학생들처럼 입시에서 살아남으려면 책 따위 읽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렇게 멀어졌던 독서를 다시 손에 잡은 건, 결혼 후 스트레스증후군 진단을 받으며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였다. 임신을 준비하고 아이를 갖고 낳아 기르는 내내 내 손에 들려 있던 건 언제나 책이었다. 엄마가 하루 종일 책을 들고 있는 걸 보고 자라서인지 아이들은 모두 책을 좋아했다.
책을 읽거나 읽어 달라고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책이 곧 아이들의 놀잇감이었다. 거실 한가득 책으로 빌딩을 짓고 기찻길을 놓으며 도시를 건설하기도 하고, 책으로 미로를 짓기도 했다. 집에 있는 책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다음으로 좋아하는 놀잇감인 A4용지를 꺼내 쓱쓱 그림을 그리고 몇 글자 적어 순식간에 책을 만들어 냈다. (미국 여행 직후에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지도책을 만들기도 했고, (자기도 다 모르면서) 자기 반 친구에게 알파벳을 가르쳐 주기 위한 영어 공부 책을 만들기도 했다.
“엄마, 이거 엄마가 만든 책이야?”
“아니.”
“왜 빨리 안 만들어? 책 만드는 거 진짜 쉬운데, 내가 하나 만들어 줄까?”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던 내게 언젠가 아이들이 뭐 하냐고 묻기에, 책을 만들려고 글을 쓰고 있다고 답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그걸 잊지 않고 끈질기게 엄마를 자극하며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엄마, ‘publish’가 무슨 뜻이야?”
영어 읽기 숙제를 하던 큰아들이 여섯 살 때 책을 읽다 말고 물었다.
“출판한다는 건데, 출판은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다는 뜻이야.”
“엄마도 출판한 거지? 엄마 맨날 책 만들잖아.”
“엄마가 책 내용을 만들기는 하지만, 아직 출판한 건 아니야.”
“그럼 엄마도 출판하면 안 돼? 엄마 책에 일러스트레이터가 없어서 그래? 내가 그림 그려줄까?”
마침 아이가 읽고 있던 책 제목이 <Comic Illustrators>로 만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에 관한 이야기였다. 글을 쓰는 작가와 만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한 팀을 이뤄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읽고, 엄마에게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사람들이 엄마가 만든 책을 사고 싶어 하지 않을 거래. 안 팔릴 것 같아 출판할 수 없대.”
“사람들이 사고 싶게 만들면 되잖아.”
“…….”
“엄마, 포기하지 마!”
그즈음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했는데, 원고 내용이 좋다고 당장 출간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잔뜩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며칠 뒤 출판사에서 말을 바꾸었다. 내가 인지도가 없어서 마케팅 팀에서 꺼린다는 것이었다. 잔뜩 의기소침해서 글쓰기를 포기할까, 좌절하고 있을 때 두 아들의 격려를 받았다. 부끄러웠다. 언제나 아이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고 말했음에도, 정작 나 자신은 내심 포기하고 있었으니까.
두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포기만은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두 아이의 격려 때문이었을까. 그때 그렇게 결심한 지 3년이 지나자, 나는 정말 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이제 책 네 권을 출간한 출간 작가다. 올해는 그렇게 꿈꾸던 등단 소설가가 되어 첫 번째 장편소설을 출간 준비 중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 도서관부터 가고 싶어 하던 아이들이 엄마를 작가로, 소설가로 만들었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4년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1:1 글쓰기 코칭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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