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의젓한 사람들>
얼마 전,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말끝마다 약속 운운하던 그는, 정작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그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버렸다. 울분보다는, 그런 사람이 또 한 명 늘어났다는 사실에 깊은 피로가 밀려왔다.
그런 와중에 김지수 인터뷰집 <의젓한 사람들>을 읽다 김기석 목사님의 ‘매력에 감염’됐다. 좋은 문장을 사진 찍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실어 날랐다. 어쩌면 말도 글도 이토록 품위 있을까. 포장만 요란하고, 막상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그 포장을 쉽게 벗어던져버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젓한 사람을 향한 갈증은 더욱 커졌다.
청탁받은 원고를 쓰기 위해 서가를 뒤적이다, 예전에 같은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발견했다. 페이지를 넘기다 문득, 그곳에 실린 김기석 목사님의 글을 마주쳤다. 같은 잡지에 나란히 글을 올린 사이라니, 그분이 나를 알 리 없지만, 한 겹의 벽이 허물어진 듯 가깝게 느껴졌다.
그의 글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이랬다.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은 타자를 책임지려 할 때다.
나의 시련을 공적 자산으로 삼아 타인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할 때,
놀라운 힘이 생긴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동안 내 마음을 짓눌렀던 체념의 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가 글에서, 그리고 내가 북토크에서 소개했던 <크리스티나의 세계>의 크리스티나는 하반신이 마비되었지만 휠체어 대신 두 팔로 풀밭을 기어간다. 그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건, 그녀가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절망 속에서도 멈추지 않기에 아름답다.
우연히 같은 잡지에 글을 실었다고 해도, 그와 내가 얼굴을 마주하게 될 일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요란한 이들 사이에서 피로함을 느끼던 중, 이 세상에 그런 의젓한 어른 하나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조금은 덜 차다.
망가진 자리에서도 내 삶을 이어가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와 단단함을 놓치지 않고 싶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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