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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세상에서, 말과 글로 품위를 지키는 사람

김지수 <의젓한 사람들>

by 윤소희

얼마 전,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말끝마다 약속 운운하던 그는, 정작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그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버렸다. 울분보다는, 그런 사람이 또 한 명 늘어났다는 사실에 깊은 피로가 밀려왔다.


WechatIMG9634.jpg 김지수 <의젓한 사람들>


그런 와중에 김지수 인터뷰집 <의젓한 사람들>을 읽다 김기석 목사님의 ‘매력에 감염’됐다. 좋은 문장을 사진 찍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실어 날랐다. 어쩌면 말도 글도 이토록 품위 있을까. 포장만 요란하고, 막상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그 포장을 쉽게 벗어던져버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젓한 사람을 향한 갈증은 더욱 커졌다.


WechatIMG9635.jpg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잡지 <월간 에세이>


청탁받은 원고를 쓰기 위해 서가를 뒤적이다, 예전에 같은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발견했다. 페이지를 넘기다 문득, 그곳에 실린 김기석 목사님의 글을 마주쳤다. 같은 잡지에 나란히 글을 올린 사이라니, 그분이 나를 알 리 없지만, 한 겹의 벽이 허물어진 듯 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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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의젓한 사람들>



그의 글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이랬다.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은 타자를 책임지려 할 때다.
나의 시련을 공적 자산으로 삼아 타인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할 때,
놀라운 힘이 생긴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동안 내 마음을 짓눌렀던 체념의 돌이 조금 가벼워졌다.


WechatIMG9636.jpg 앤드류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그가 글에서, 그리고 내가 북토크에서 소개했던 <크리스티나의 세계>의 크리스티나는 하반신이 마비되었지만 휠체어 대신 두 팔로 풀밭을 기어간다. 그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건, 그녀가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절망 속에서도 멈추지 않기에 아름답다.


우연히 같은 잡지에 글을 실었다고 해도, 그와 내가 얼굴을 마주하게 될 일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요란한 이들 사이에서 피로함을 느끼던 중, 이 세상에 그런 의젓한 어른 하나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조금은 덜 차다.


망가진 자리에서도 내 삶을 이어가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와 단단함을 놓치지 않고 싶다.




WechatIMG9625.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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